여유의 종착점, 베이킹

초보주부의 홈메이드 쿠키

by 프렌치장금이

살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밤사이에 마른 그릇들을 찬장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바닥청소를 한다. 거울에 묻은 얼룩들을 한 번씩 닦아주고,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는다. 밥 먹고 설거지하고를 하루에 3번 반복하고, 사이에 남편 증량용 간식까지 챙기다 보면 왜인지 바쁜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부지런히 보낸 하루를 돌아보면 애석하게도 흐린 눈 해버리고 내일로 미룬 집안일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야무지게 살림을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휴식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게다가 그게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면 더더욱 휴식이 간절하다.



유럽할머니가 되고 싶은 나에게 베이킹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청소랑 식사준비만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버렸다. 베이킹을 한다는 것은 모든 집안일을 다 끝내서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살림의 고수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또 매일 먹는 식사와 다르게 빵과 디저트는 가끔 먹는 간식이다. 심지어 밖에 나가서 몇 천 원이면 달콤한 간식들을 편하게 사 먹을 수 있다. 살고 있는 곳이 제과제빵의 종주국 프랑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마트에서 파는 과자만 해도 풍미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랑스에 살면서 시제품의 맛에 길들여지고 기본 살림만해도 바쁘다는 이유들로 베이킹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분야가 되었다.



비가 와서 집에만 있던 날에 유독 달콤한 게 먹고 싶어 뭐 좀 먹을 게 있나 하고 찬장을 살피던 중 내 눈에 밀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버터도 있고 설탕도 있었다. 계란은 없었지만 버터쿠키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레시피를 검색했다. 그렇게 갑자기 나의 첫 베이킹이 시작됐다.


저울이 있을 리가 없는 우리 집에서 계량은 밥숟가락 기준으로 통일되었다. 휘핑기도 없어서 밥숟가락으로 열심히 저어가며 반죽을 만들었다. 오븐용 틀이 없어서 열이 잘 전달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접시에 대충 올렸다. 맛이 있을지 아니, 완성이 될지 모르겠는 쿠키를 무작정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쿠키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쿠키를 흰 우유에 찍어 먹는 것보다 좋았다. 아무 생각 안 하고 귀여운 노래 들으면서 달콤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라니.. 그렇게 베이킹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문제는 과정을 즐겼으나 결과는 참담했다는 것이다. 계란이 없었던 탓인지 엄청나게 딱딱한 쿠키가 완성되었다. 사실 쿠키가 맛없을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환경이라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베어 물고 커피를 홀짝이면 나름 먹을만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여유를 누리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 내가 할 일을 다 끝내야만 누릴 수 있고, 시간이 많은 상태에서 느긋해야지 누릴 수 있는 게 여유라고 생각했다.


한 입 베어 문 달콤한 초콜릿, 답답한 마음을 식히는 시원한 커피 한 모금,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수북하게 푼 밥 한 숟가락도 여유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해도 그 틈에 여유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여유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유는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다.


언젠가 살림의 고수가 되어 여유가 생기면 베이킹을 하겠다며 기다리기만 했던 나는 순간의 시도로 어떻게든 베이킹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유의 종착점이라 생각했던 분야가 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과물을 보면 비록 내가 꿈꾸던 베이킹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바쁜 일상 속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이렇게 틈틈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여유를 찾아나가다 보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인생이 완성되지 않을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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