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2일 수요일 늦은 8시. 아내가 수개월에 걸쳐서 준비한 공연이 대학로에서 있었다. 아내와 팀은 이 공연을 위해서 제주도 전통 굿을 배우기 위한 워크숍을 떠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까지는 어떤 공연인지 크게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까지 가서 워크숍을 하는 이유를 핑계 삼아 놀러 가는 것이라고 가벼이 생각을 했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이번 공연의 주제가 제주 4.3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의 전말을 모른다. 1948년, 해방 후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 시기에 아름다운 섬으로만 기억하는 제주에 비극적인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자국의 군대에 의해서 400여 명이 넘는 제주도의 주민들이 학살되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붉은 딱지를 마구잡이로 선량한 제주도민들에게 붙였다. 그리고 그들을 빨갱이라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빨갱이 낙인이 찍힌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국군의 총칼에 의해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어른들과 노인은 말할 것도 없었고 부모를 잃은 가난한 아이와 아기들 조차 희생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뭍에 있던 국민은 알 수가 없었고 그렇게 묻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큰 사건이 50여 년이 지난 후 2000년이 되어서야 당시 사건의 조사를 시작했고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서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인 사죄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이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한 인식은 저조하다. 국가 차원에서 유족과 피해자에게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며 공동체적 보상의 일환으로 4.3 사건 평화공원 조성사업도 벌였다. 그러면 된 것인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은 그렇게 보상을 받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아내와 아내의 팀이 준비한 공연은 바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굿을 소재로 한 공연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들을 위한 작은 위로를 내 아내와 팀의 소리로 이루어졌다. 상당히 자랑스러운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굿을 생각하면 무당이 작두를 타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현란한 모습 뒤에 왜는 희미하다. 왜 무당은 굿판을 벌이는가?
나라마다 저마다의 무속신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만큼 굿의 형태도 다양하다. 하지만 굿을 하는 이유는 대게 비슷하다. 인간의 이야기를 굿이라는 형태를 통해 신과 죽은 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평범한 인간은 신과 망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 무당이 필요하고 무당은 굿이라는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또한 기독교에서 행하는 평범한 굿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굿은 반드시 심각하거나 현란할 필요는 없다. 겸허하게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저 위에 닿길 바라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화 X무악이 딱 그랬다.
이번 공연의 기본 형태는 제주 전통 무속 굿을 국악으로 표현했다. 소리꾼, 대금, 해금, 타악 총 네 명의 음악가들이 굿판을 벌였다. (굿판이란 표현보다는 공연이 더 어울리지만 나는 굳이 굿판이란 표현을 쓰고 싶었다.)
흰 백의 무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굿의 이미지를 주지 않았다. 공연의 배경을 모르고 방문한 관객은 일반적인 국악공연이라고 생각할 만큼 깔끔한 공간이었다.
타악을 시작으로 굿판은 시작되었다. 약 5분 정도 긴 시간 동안 타악의 울림으로 그날의 억울한 영혼을 대학로 한 복판으로 불러 모았다. 초반에 징과 장구에서 떨리는 진동의 주파수는 육체가 없는 영혼들의 파동수와 맞추려는 교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대금의 한 서린 파열음이 이어졌다. 푸픕푸픕.... 제3의 텅 빈 공간에서 듬성듬성 힘 없이 서 있는 늙은 나무들에 부딪혀 발생하는 듯한 마찰음 같았다. 타악의 부름에 응답한 영혼들이 문을 열고 굿판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 그들은 울었다. 끼이잉... 끼잉. 히이이익... 해금을 통해 오열했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직유적 표현이다. 정말로 한 움큼의 영혼이 돐 지난 아가만한 해금의 두 줄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고 해금은 흐느끼며 서럽게 울어댔다. 어미 또한 어찌할 줄을 몰라 그렇게 아가를 품에 안고 함께 오열했다. 처량한 둘의 울음소리가 어찌나 서럽고 원통하던지... 그날의 억울함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악사들은 그들을 불러내어 원통함을 토하게 만들었고 소리꾼은 한 동안 그들의 억울함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나긋이 소리꾼은 인간의 언어로 그날의 사건을 담담하지만 진솔하게 노래했고 울었다.
후세의 누군가 그대들을 기억하고 위로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위로를 하고 달래준다 한들, 있었던 사건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망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말이다. 굿의 의미는 해결이 아님을 이 공연을 보면서 느꼈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 정화X무악의 공연은 해결을 하며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자신들의 작은 소리로 그들을 모두 위로하고 달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는 무대였다. 딱 거기까지...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런 작은 시도가 중요하고 위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누군가 당신들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함께 마음 아파하고 있다. 이 사실이 해결이 되진 않겠지만 2월 12일 오후 9시 오늘만큼은 편안히 눈감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들을 위해 준비한 이들의 노력도 헛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