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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Sep 04. 2023

매일 아침 만나는 그대

로맨틱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이가 있는가.


출근길 버스정류장.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뻐정(요즘 세대들은 버스정류장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에 도착하면 늘 그 곳에 좋은 샴푸 향을 풍기며 서 있는 그녀,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다 보니 그녀가 어디서 내리는지도 알게 되고 어느 날은 ‘슬쩍 말을 한 번 걸어 볼까’라며 로맨틱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어느 날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괜히 궁금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의 진지한 걱정도 한 번 해보고...


로맨틱 장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라면 이러한 만남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와는 조금 다른 매일 아침 만남이 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르셨다면 지금부터라도 들어주시길 당부 드린다. SBS LOVE FM <고현준의 뉴스브리핑> - 매일 아침 6시 5분부터 7시까지 진행되며 6년 째 라디오 청취율 부분  TOP 100 에 꾸준히 올라있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유튜브로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는데 내가 진행하는 방송도 그러하다. ‘라디오’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떠들고 있는 진행자에 대한 궁금함과 설렘이 한 몫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는 이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유튜브 스트리밍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볼 수 있어 청취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한데 이게 마냥 장점만은 아닐 수 있다. 아시다시피 선플보다는 악플이 창궐하는 시대 아니던가.


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올라온다. 찬반이 극심하게 대립되는 뉴스의 경우에는 그 표현 수위가 몹시 그로테스크하다. 단순히 ‘바보’, ‘찐따’ 등의 표현은 귀여울 정도라서 ‘죽인다’, ‘죽어라’ 등 목숨을 내놓고 방송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외에도 인신공격성 댓글도 부지기수인데 ‘못 생겼다’, ‘눈깔이 맘에 안 든다’, ‘목소리가 얌생이 같다’ 등 부모님이 들을 경우 속상할만한 내용의 댓글도 다양하다.


방문자들 중에는 매일 아침 부지런히 반복적으로 댓글 창을 방문하는 닉네임들이 있다. 물론 반갑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하는 방송이니만큼 희망찬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더 많지만 앞서 밝혔듯 그렇지 못한 이들도 제법 있다. - 누군가는 선플과 악플이 동시다발로 달리는 댓글 창을 보며 <고뉴브 –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의 줄임말이다>야 말로 이 시대가 그토록 애타고 찾고 있는 중립 오브 중립 방송이라 평가하더라. - 그 중 매일 아침 같은 시각, 같은 단어로 댓글 창에 등장하는 닉네임이 있다. 그의 정체를 전혀 알진 못하지만 “xx 출신 고현준 아웃” 이렇게 시작된 그의 댓글은 “고현준을 퇴출하라” “빨갱이 고현준” 등으로 점진적으로 에스컬레이팅 되다가 “내가 이 방송을 다시 들으면 xxx다”로 마무리 된다. 재밌는 것은 마지막 댓글이 무색하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같은 시각에 여지없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방송 내용과도 큰 상관이 없고 맥락에도 맞지 않는 댓글을 다는 이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마냥 내가 싫은 것일까. 싫다면 왜 싫은 것일까. 한 동안 생각이 많았다. 화가 나기도 했고 IP 추적이라도 해서 찾아내 응징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맘을 고쳐먹었다.


그가 측은했다. 나를 헐뜯는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그는 내가 싫은  아니라 스스로싫어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고 이내 살짝 안쓰러워 졌다. 사실 그는 나를 제대로 싫어할 수가 없다. 그가 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수차례 방송에서 울산 출신이라는 것을 얘기했음에도 여전히 틀린 정보로 “xx출신 고현준이라며 본인이 비하하고 싶은 지역과 함께 나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혹은 제대로 알아  생각조차 없이 그저 힐난하고 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욕하고 싶고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 것이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헐뜯는 사람들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스스로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무언가를 부러워하여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어 버린 마음이 그로 하여금 매일 아침 부지런히 댓글 창에 출석해 악플을 다는 동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털어 버리기로 했다. “당신은  스스로를 싫어하는군요라며 나의 에너지를 아끼기로 했다.  아낀 에너지가 연민의 정으로까지 이어지면 나는    성장할  있다. 이런 멋진 생각을  나를 보니 !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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