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멍석 깔아 주면 잘 논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두 아들의 엄마.
세상 즐겁게 사는 베짱이의 아내.
학생들이 쪼금은 무서워하는 사서선생님.
이 세 가지를 열심히 하며 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남편, 직장을 위해 사는데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건 언제 하지?
한창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서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 갈 때에, 결심했다.
나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시간을 주자고.
시간이 없으면 쪼개고 쪼개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고.
나이가 들었다고, 재미있는 것이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니, 일상에 치여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이 점점 뒤로 밀리는 것일 뿐이다. 아이가 먼저가 되고, 남편이 먼저가 되고, 직장이 먼저가 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우선순위의 최하단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일 뿐이다.
나에게 시간이 있고 챙겨야 할 누군가가 없다면 다시 아이가 된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즐겁고 신나게 놀 수 있을 텐데.
자전거를 타는 동료가 일터에 있었다.
수영도 50미터 수영장에서 전력으로 접영, 자유형, 평영으로 두 시간을 넘게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면 기본으로 100km는 가는, 나보다 10살은 많았지만 엄청난 체력을 가진 그녀가 너무도 부러웠다. 비록 무릎의 도가니가 나가 지금은 포기했지만, 한때는 철인삼종경기도 했던 그녀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집에서 먼 곳에 가지 않아도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곳에 온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
나도 자전거가 타고 싶다.
자전거를 사려했더니,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특히 유럽에서의 자전거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삼천리자전거 가격에 한대를 장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베짱이를 구워삶아 절대 그에게 자전거를 함께 타자고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베짱이는 운동을 극혐한다) 꽤 큰 금액에 내 생전, 처음으로 나를 위해 새 자전거를 구매했다.
자전거를 샀으니, 시간을 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본전은 찾아야지.
산으로 들로 놀러 나간다.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지나가다 토끼도 보고, 나무와 풀도 본다. 숨구멍이 트이는 것 같았다. 끝없이 페달을 구르다 보면,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구의 엄마인지, 내일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아이들 학교 준비물과 숙제도 다 잊는다.
다 사라지고, 여기에는 페달을 구르는 나만 있다.
2022년 여름, 처음으로 혼자서 떠난 자전거여행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고, 또 처음으로 자전거로 떠난 여행이기에 더더욱 잊지 못한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3개국, 자전거로만 360km를 3박 4일간 여행하는 여정이었다. 정말로 밥 먹고 자전거만 탔다.
처음에는 체력이 대단한 철인삼종경기를 했던 동료가 같이 간다고 했다가 막판에 사정이 생겨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할 때, 그 사람이 함께 할 것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조건 혼자 하는 것을 디폴트로 깔고, 같이 가면 재밌어서 좋고, 혼자가도 자유로워 좋고라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아쉽지는 않았다. 동료는 300km가 넘는 여정을 자전거 장거리여행 경험이 없는 내가 혼자 가는 것을 극구 말렸다.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그럼 자기가 다 알려주고 보여주겠다고 했다. 자전거에 펑크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어쩔 거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혼자 떠났다. 원래 천성이 황소고집에, 마음먹은 것은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이렇게 할 걸 그랬다) 자전거가 펑크가 나면 유튜브를 보고 고치면 되고, 사고가 날거라 생각하면 그냥 집에만 있다가 계단 내려올 때 자빠져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거고,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차피 몸도 튼튼한데 내가 배운 호신술로 어찌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그런 우려할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될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데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 당시, 마음 쓸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이것저것 마음이 복잡했는데 아침에 해 뜨면 출발하여, 저녁 먹을 때까지 하루 종일 혼자 페달을 구르며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가톨릭 혹은 불교에서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논리가 이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머릿속은 맑아졌다.
외향형이지만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여행은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었다. 신나게 자전거를 구르다, 루트를 바꿔 온천에 가서 노곤한 몸을 풀고 가기도 하고, 가다가 배고파 길바닥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하고, 내 몸 하나만 간수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4일 동안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자전거를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탈 수 없을 만큼 타다가 (첫날 125km를 타고 그다음 날 일어났을 때는 코끼리가 나를 밟고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온천욕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내가 다시 가고 싶을 때 가고,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고 4일 내내 주야장천 내가 좋아하는 것 만 하는 게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맨 뒤로 밀어 넣고 다른 사람만이 우선이 되었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곳 와플국에 뿌리를 내리며 정말 열심히도 노력했다. 24살 새색시, 무직 언어연수자, 공장노동자, 워라밸은 전혀 없는 사람 잡는 미국회사, 뮤지엄 보안직원, 매일 울며 퇴근하던 외국인관리청, 하루 종일 색목인의 벗은 몸만 보던 시립 수영장, 영혼까지 갈아 넣고 일하던 빈민가 도서관, 아기 안고 울며 공부하던 대학원, 한숨 돌릴 수 있던 구립도서관에서 현재의 재능 있고 똑똑한 사람 가득한 학술도서관까지.
숨 쉴 새 없는 전쟁 같은 육아와, 내 아이들에게 칭챙총이라 하는 아이들 참 교육, 아이들이 끈기와 용기를 배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한 각종 스포츠 등등, 엄마로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냥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는 사이, 1년이 2년이 되었고, 눈을 다시 한번 깜빡하니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벌써 17년이 되어있었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인종차별로 유명한 벨기에라지만, 살면서 아이들의 파티가 끝나고 함께 설거지를 해 주는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도 친구가 되었고, 내가 넘어질까 엎어질까 걱정해 주는 동료지만 친구에 가까운 사람들과, 내가 어떤 길을 가던 응원해 주는 사람들, 먼 곳에 있어도 내가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와 주는 내 친구들.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가장 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이제는 엄마, 아내, 직장인 말고 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그런 행복한 사람.
지금까지 엄마와 아내로서 와플국, 벨기에에서 겪었던 일들을 그린 좌충우돌 "와플국 유교어멈 자식농사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하는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끝나면 또 다른 연재로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추장와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