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실직고

Feat. 베짱이찬가

by 고추장와플

2024년 2월 24일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이후, 나는 쭉 글을 써 왔다. 일주일에 하나 혹은 둘, 어쩔 땐 셋, 이렇게 꽤 많은 글들이 모였다. 처음엔 베짱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으나, 유교어멈 와플국 자식농사기를 쓰며, 베짱이가 종종 내 글에 등장했고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 혹은 함께 저녁 먹으러 가서 눈치 없이 아주 비싼 와인을 시킨 이야기 등등 배짱이 없이는 글쓰기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으니...


사실 브런치 글쓰기는 베짱이에게 지금까지 비밀이었다. 베짱이에 대한 울분을 털어놓기에 그만이기도 했고, 어차피 한글도 잘 못 읽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짱이, 할 말이 있다.

응, 뭔데?

사실 나 글 쓴다.

엥? 뭐라고?

한국의 글쓰기 플랫폼에 1년 좀 넘게 글을 써 오고 있었어.

아, 그래? (자기와는 별 관련이 없으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근데 이실직고할 것이 있어.

그게 뭔데?

거기에 네가 베짱이로 등장해. 나는 개미, 너는 베짱이... 미안하다. 근데 사실이잖아? 사실인걸 썼으니 불만 없지?

하하하하, 그래 뭐 좋아.


호탕하게 웃는 베짱이. 그라췌, 그게 베짱이다. 나와는 다르게 인생에 걱정도 없고, 먹을 것이 떨어져도 개미만 일단 믿고 보는 베짱이. 베짱이는 특별히 무언가에 목숨 걸지도, 간절하지도 않다. 항상 여름날만 있을 것처럼 산다.


베짱이의 짝꿍 개미는 성격이 매우 지랄 맞다. 일을 많이 하지만,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베짱이를 갈군다. 일을 많이 하는데 입까지 다물고 있기엔 내 성격이 너무 거시기하다. 더러운 성격에, 다혈질이고,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개미옆에 베짱이는 도망도 안 가고 딱 붙어있다.


나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사는 여자, 소처럼 일하는 여자, 개미

는 하루를 12시간처럼 사는 남자, 나무처럼 안 움직이는 남자, 베짱이


가끔 상상해 본다.

부지런하고, 소처럼 우직한 짝꿍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거기서 스톱! 그런 짝꿍이지만 성격이 나 같았으면 나는 도망갔을 것 같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같이 막무가내로 일단 뛰고 보는 여자, 생각은 나중에 하는 여자와 살기 엄청 팍팍할 것 같다.


뭐 하나 시켜놓으면 매의 눈으로 할 때까지 지켜보는 징글징글한 개미가 바로 나다. 하지만 베짱이도 만만치 않다. 오늘 할게로 시작해, 내일 할게, 내일모레 할게와 나중에로 계속 돌려 막는 베짱이.


내가 카드깡이냐, 계속 돌려막게.


하지만 가만 보면, 나도 보통은 아니다. 일주일이 걸리더라도, 한 달이 걸리더라도 할 때까지 매일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는 도찐개찐이다.


오래전 만났던 드러머보이가 이제는 흰머리가 성성한 드러머 중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베짱이 드러머를 데리고 산 나에게 일단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나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테니 잘 챙겨 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사하라 사막처럼 메마른 감성,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며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한 방울 감성을 나눠주는 베짱이. 어떤 가게에서 환불 안 해준다고 드러누워버린 나를 모른척하고 도망가지 않은 베짱이.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소싸움 나간 소처럼 화를 내는 엄마를 진정시키는 아빠베짱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소파에서 궁뎅이를 떼는 베짱이.


내가 집 사자고 우겼을 때도, 아기 낳고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도, 회사를 옮긴다 했을 때도,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던 베짱이.


화를 내는 것을 손에 꼽을 정도로 봤어도,

나와 아이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상대에게 불 같이 화를 내는 베짱이.


실천력 제로인 베짱이와 오늘 마음먹으면 지금 시작하는 성격 급한 개미.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만난 개미와 베짱이인지도.


100프로 한국인 감성인 나는 왜 어르신들 인터뷰하면 배우자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이제 알겠다.

사랑해란 말은 민망하고 부담스러운데 고마워는 스리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


나랑 사느라 욕봤다, 베짱이.

고마워.




베짱이와 베짱이의 친구들이 벨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앤트워프의 유명한 문화재도서관에서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해리포터에 나올듯한 멋진 문화재도서관에서 연주된 1시간가량의 재즈음악을 감상해 보세요.


Stefan Bracaval Quartet

Stefan Bracaval 플루트, 작곡
Hans Van Oost 기타
Hendrik Vanattenhoven 콘트라베이스
Nico Manssens 드럼


https://youtu.be/uWhL8P02ZmI?si=w9TiXghgzZfmoI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