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제가 연재일이었지만 브런치 스토리를 하루 늦게 발행하게 된 점, 제 글을 기다리셨을 구독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차에 치어서 글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제 글은 과거부터 시간순으로 쓰고 있지만 오늘은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먼저 적어볼까 합니다.
벨기에살이 16년 차, 나 같은 고인 물에게도 자의든 타의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일은 일어난다.
금요일 오후, 퇴근을 하며 집에 가서 뭐 먹지 생각하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다.
벨기에의 특히나 플랜더스 지역에서는 언덕이 없고 어딜 가도 완만하고 평야인 지역이라 자전거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있고 안전하다. 단! 운전자가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볼 경우에는 말이다.
실제 사고를 낸 차량과 자전거도로
사고는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다. 자전거 도로에서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기다리다 초록불로 바뀌어 출발했다. 저 사진에 보이는 흰색 벤츠차량이 우회전을 했다. 나를 봤을 줄 알았다. 당연히 자전거도로에서 직진을 하는 사람이 우선이기에 멈출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판단미스였다.
나는 결국 자전거를 탄 채 자동차에 부딪혔고, 손목과 무릎 쪽으로 넘어졌다. 무릎은 다 까져서 피가 철철 나고 손목은 겁나게 아팠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렇지만 16년의 벨기에 생활을 통해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지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냥 골로 간다는 사실을... 너무 놀라고 정신이 없어 손과 발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차에서 운전자가 내린다. 괜찮냐고 물어본다. 느낌이 또 쎄하다... 내가 앞 몇 화에 걸쳐서 썼듯, 벨기에에는 모로코 이민자들이 엄청 많다. (아랍이 아니고 벨기에입니다.참조) 또 거기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문화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벨기에에서는 자전거든, 차든, 보행자든 교통사고가 나면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필수로 적어야 한다. 지난번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문을 확 열어재낀 운전자 때문에 한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때도 또 모로코 이민자였고 그때도 서류작성을 거부했다. 나도 편견 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 경험이 반복되면 나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
운전자: 괜찮아요?
나: 안 괜찮아요. 보험서류 있지요? 작성해야 하니까 꺼내세요.
최대한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생각하며 벌벌 떨리는 손을 하고 말했다. 그 사이 나는 내 옆에 있던 여자분에게 나중에 혹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증인으로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친절하게도 100프로 내편을 들어주며 전화번호와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운전자가 도망갈 경우를 대비하여 번호판과 차량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에 치어 무릎에 피가 줄줄 흐르고 손목도 아프고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상태에서, 혼자 냉철하게 정신줄 제대로 잡고 해야 했다.)
내 쎄한 느낌은 역시나 딱 맞아떨어졌다.
운전자: 거 보니까 자전거도 멀쩡하고 무릎만 쪼금 까진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가서 있다가 이상 있으면, 내가 전화번호랑 이름줄테니까 그때 연락하죠?
나: 서류는 당연히 써야죠. 안 쓰면 경찰에 신고 할 거예요.
운전자: 하고 싶으면 해 보시든가.
경찰에 전화해서 상황설명을 했다. 그런데 경찰은 당연히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합의해서 서류작성을 하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차도에 계속 길을 막고 있어서 뒤차들이 가지 못해서 빵빵댄다. 운전자는 차를 주차하고 오겠다고 한다. 어차피 사진과 번호판도 다 찍어놨고 증인도 확보했으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피가 줄줄 흐르는 무릎과 퉁퉁 부은 손바닥을 하고 30분을 기다렸다. 주차를 100번도 하고 남았을 시간이다.사진에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창문너머로 "그 자식 100 퍼 도망갔어. 빨리 경찰에 전화해. 경찰 오면 증인은 내가 해줄게." 라고 한다. 결국 경찰에 다시 전화를 해서 방금 사고 나서 전화했었는데 운전자가 주차한다고 가서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5분쯤 뒤에 경찰이 도착했다.
음주테스트를 진행 후 경찰이 조서(Process verbal, 구두로 서술하면 경찰이 사건을 받아 적고, 법적인 효력이 있으며 교통사고의 경우 경찰법원으로 넘어간다. )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운전자가 차를 타고 유유히 나타난다.
운전자: 나 한 10분 정도 주차할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벌써 와 있었네요. (거지 같은 놈. 10분 같은 소리 한다. 위에서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30분이라고 정정해 주심)
30분이 지났는데 주차를 못하고 차를 타고 나타났으면서 뻥도 이런 뻥을 치다니. 누굴 바보로 아나.
운전자: 아니 근데 내 차가 좀 크니까 이렇게 작은 여자가 작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내가 못 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뭣이라고? 나는 작지도 않고 내 자전거는 샛노란색이어서 못 보기가 매우 어렵다. )
라는 개소리를 경찰 앞에서 시전 했다. 머리가 썩 똑똑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경찰도 어이가 없고 운전자의 태도에 분노를 했기에, 운전자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용지 대신 계속해서 조서를 써 나갔고, 경찰이 구급차를 불러주어 그렇게 나는 병원에 실려갔다.
그런데 또 벨기에에서는 거의 반쯤 죽어나가지 않으면 응급실이고 나발이고 계속 기다려야 한다. 무릎팍에 상처치료는 금방 받았지만 퉁퉁 부은 손바닥과 엄지손가락의 통증이 남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파도 죽지는 않음으로 결국 5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깁스를 받았다. 그렇게 자정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교통사고 났으니 무조건 며칠 입원하는 것은 벨기에에서 통하지 않는다. 반쯤 죽어가야 의사가 와서 봐주기 때문에 입원은 안 시켜준다. 우리나라처럼 3-4일 병원 하는 경우는 진짜로 심각하게 다친 경우를 빼고는 전무하다.
남편이 병원 앞으로 데리러 왔다.... 정말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이 싸가지 없는 운전자는 내가 회사에 가지 못해서 생기는 내 월급도 내야 하고, 구급차, 치료비용 등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경찰법원에 출두해야 하는 상황이 남았다. 제발 벌 좀 받기를...
고단한 하루 뒤에 깁스를 하지 않은 손으로 끊임없이 회사와 경찰에 넘길 서류를 한 손으로 작성했으며, 몸은 너무 피곤했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제때 올리지 못한 이유이다.
혹시라도 해외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꼭 교통사고가 나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알아 두시길 바란다. 정신이 없어도, 증인과 상대방의 번호판은 필수로 파악해야 하며 경찰에 신고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외에 사시는 분 들 이건, 한국에 사시는 분 들 이건, 모두 항상 몸 조심하시고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