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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균 Oct 26. 2017

3,900원의 비밀

#43. 삼구포차에 숨겨진 넛지 전략

* 이 글은 삼구포차를 자주 이용하는 열렬한 팬(?)으로써 분석한 글입니다.


유난히 술이 한 잔 땡기는 날이 있다. 뭔가 울분이 터지는 일이 생길 때,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내 안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 날이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지만, 

내 일은 알아서 한다며 살아온 이들이 잠시 모여 삼삼오오 내일의 우리를 논한다. 이 곳은 왁자한 분위기에

푸른 소주가 정신없이 오가는 술집이다.


술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안주' 다. 술에 안주가 빠지면 섭하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안주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근 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삼구포차라는 브랜드가 있다. 삼구포차는 모든 안주를 3,900원이라는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팍팍한 서민들이

애용할 수밖에 없는 브랜드이다. 또한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가성비가 높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이다.


그런데, 왜 삼구포차의 안주 가격은 3,900원일까? 이름 때문에 3,900원으로 지은 것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3,900원이라는 가격을 통해 우리는 다른 술집보다 '삼구포차'를 먼저 떠올리게 되며,

더 많이 소비하게 되고, 더 싸다고 인식하게 된다. 즉, 3,900원이라는 가격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로 작용할 수 있다. 오늘은 삼구포차의 안주 가격인 '3,900원'에 숨겨진 비밀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기수가격결정의 심리 ; 4,000원보단 3,900원

첫 번째 질문, 왜 삼구포차의 가격은 4,000원도 아니고 3,950원도아닌  3,900원일까? 이는 사람들이 

가격을 인식하는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이기 때문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당신이 TV에서

한 번 쯤 본 적 있는 광고를 보여주도록 하겠다.


39,800원이라는 가격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39,800원이라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9,800원을 냉정히 바라보면, 40,000원에서 단순히 200원을 뺀 가격이다. 하지만 200원을 빼고

빼지 않고에 따라 사람들이 가격을 인식하는 비율은 급격하게 달라진다. 사람들은 40,000원을 비싸다고

인식하고, 39,800원을 싸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을 '기수가격결정'이라고 한다.

기수가격결정이란, 소비자들이 가격의 자릿수가 줄어들거나 자릿수의 앞 숫자가 작아질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고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가격결정 전략이다. 예를 한 번 들어 보자.


A : 100원 -> 99원(1원 할인, 1% 할인) (가격의 자릿수가 3자리에서 2자리로)
B : 5,000원 -> 4,900원(100원 할인, 2% 할인) (자릿수의 앞 숫자가 5에서 4로 줄어듬)


할인율을 봤을 때에는 할인이 거의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99원과 4,900원이란 가격을

봤을 때, 상대적으로 100원과 5000원이라는 가격보다 싸게 보이는 심리는 기수가격결정 전략이 노리는

것 중 하나이다.


3,900원이라는 가격도 마찬가지다. 물론 브랜드 네이밍에 따라 3,9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900원이라는 가격의 본질은 소비자들이 상대적인 가격을 더욱 저렴하게 인식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끔 만드는 넛지 전략이다.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가격에 끌려

다른 대안들 중에서 삼구포차를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심리 계좌 ; 3,900원이 불러오는 더 큰 소비

3,900원은 단순히 싸게 보이는 심리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안주를 제외한 술이나 음료수를 소비하는 데

더욱 관대하도록 만드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즉, 3,900원이라는 가격은 다른 제품을 더욱 소비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심리 계좌'라는 것이 있다. 즉, 사람들은 특정한 돈에 대해 이름이나 가치, 특성을 매긴 뒤

관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 계좌에 대해 개념이 모호한 사람들을 위해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60,000원을 벌었다. 집에 가는 길에 100,000원을 주웠는데, 지갑이 없는 걸로
보아 누군가 떨어뜨렸을 것이라 가정하고 돈을 주웠다. 복권을 살까, 뭘 할지 행복한 고민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경제학에 의하면, 내가 번 돈 60,000원과 내가 주운 돈 100,000원은 똑같은

소득이라고 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 돈을 소비습관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 이성적으로 소비하지도 않으며, 절대 60,000원과 100,000원을 하나로 합쳐 버리지도

않는다. 우리는이런 식으로 60,000원과 100,000원을 정의할 것이다.


아르바이트 계좌 : 60,000원 - 이건 내가 일해서 번 돈이니 아껴 써야 한다
공돈 계좌 : 100,000원 - 이건 내가 주운 돈이니 써도 상관 없다


사람들은 60,000원과 100,000원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60,000원과 100,000원이라는 돈은

따로 구분되게 되고, 주어진 두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차이가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공돈'

계좌에 있는 돈에 대해선 더 많이 소비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특정한 노력 없이 만들어진

돈이기 때문이다.

심리 계좌 중 '공돈 계좌'는 우리가 별다른 고민 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수단인데, 이는 단순히 공돈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뜻하지 않은 할인을 받았을 때도 공돈 계좌에 돈을 저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10,000원 제품을 사러 갔는데 6,000원으로 할인행사를 해서 4,000원을 남겼다.


예시에 나온 상황에 의하면, 당신은 뜻하지 않은 할인으로 인해 4,000원을 아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심리 계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사람들의 심리 계좌는 할인받은 4,000원을 '공돈 계좌'로 분리함으로써, 

'어차피 써야 할 돈이었지만 다른 데 써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6,000원 - '사야 하는 것' 계좌(내가 사야 할 물건만을 소비하는 계좌)
4,000원 - 공돈 계좌(뜻밖의 할인 행사로 남은 돈)


대부분의 사람들은 4,000원이 남을 때, 다른 물건을 사거나 더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쓴다. 그 이유는 4,000원이라는 돈을 이익으로 생각하여 어차피 쓸 돈이라면 더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삼구포차로 돌아와 보자. 당신이 삼구포차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기존 술집에서의 안주 가격이

12,0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당신의 심리 계좌는 이렇게 돌아갈 것이다.


다른 데에서는 12,000원인데 여기서는 3,900원이네. 무려 8,100원이나 싸네.
8,100원을 공짜로 얻었으니 술을 더 마시거나 안주를 더 시키자!

당신이 할인받은 8,100원은 애초에 예상했던 '소비계좌'에서 '공돈 계좌'로 이동한다. 즉, 공돈 계좌로 돈이

이동함으로써, 당신은 8,100원이라는 금액에 대해 굉장히 관대해지며 다른 것을 시키거나, 더 좋은 술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싼 가격은 당신이 싸게 무엇인가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할인을 받은

가격을 공짜 돈으로 인식하게 하여 더 많이 소비하게 할 수 있는 넛지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 싼 가격이 더 큰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싼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준다. 하지만 싼 가격에는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더 이익이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하여 장기적으로는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더 많이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넛지이다.

가격이 쌀 때, 소비금액이 줄어들지 않는다.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심리계좌다. 즉, 당신이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대한 것이 싼 가격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싸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사실은 생각보다 치밀한 비밀이 숨어 있다.

이러한 부분을 알아놓는다면, 당신의 소비습관은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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