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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균 Jan 31. 2018

'무한리필'의 비밀

EP.14 '무한리필'에 숨겨진 넛지 전략

"무제한으로 다 드실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무제한' 이라는 문구가 나를 잡아 끈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입장에서는 무제한제도는 참

고마운 제도다. 똑같은 돈을 내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내가 무엇을 해도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옵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제한이라는 말로 인해 우리는 어느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특정한 행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넛지 전략이다. 그렇다면 무제한이라는 말에는 어떤 행동설계가 들어 있길래,

특정한 행동을 우리도 모르게 하게 되는 것일까? 오늘은 무제한이라는 말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물론 오늘 알아볼 내용은

무제한 리필집의 원가나 이익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 리필 매장에서 우리가 하는 특정한 행동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리필(refill) ; '부족함' 을 채우기

리필이라는 이름은 사실 're(다시)+fill(채우다)' 로, 무엇인가를 다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선

패스트푸드점, 패밀리 레스토랑, 영화관 매점 등에서 음료를 보충해 주는 의미로 주로 쓰이다가, 최근엔

고기나 떡볶이 등 음식에서까지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리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족함' 이라는 인식이 생길 때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한데, 리필은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활용해 기업이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물컵의 물을 다 마시게 되면 또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본능적으로 정수기로 가는 것은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다. 부족함은 갈증과 식욕, 추위, 더위 등 인간의 본능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을 충족시키려는 것부터 시작하여 생각이 필요한 철학, 꿈, 선택의 상황 등 사유가

필요한 상황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리필은 어쩌면 어떤 수단이든 간에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생각하여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일지도 모르겠다. 일시적으로 부족함의 욕구를 없애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면, 갈증이라는 부족함은 그 공간에서는 잠시나마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 부족함을 해소하는 방법

다음과 같은 두 옵션이 있다.


A : 쿠키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쿠키는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다.

B : 쿠키를 10개 먹을 수 있다. 쿠키는 10개를 먹으면 모두 없어진다.


여러분에게 물어보자. 쿠키를 먹는 만족감은 A가 높을까, B가 높을까? 

이 질문에 대해 익명 SNS 모씨에서 필자는 2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를 선택한 사람은 51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즉 무한대를 선택한 사람은 전체의 20.4%에 불과했다.

왜 사람들은 쿠키가 무한대로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만족도는 무한대가 아닌 유한대가 높다고

답변한 것일까?


이는 경제학적 용어인 '한계효용'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가능하다. 한계효용이란 재화나 용역이 증가하고 

감소함에 따라 주관적으로 매겨지는 경제적 효용(혹은 가치)의 관계에 대한 개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사람이 똑같은 재화나 용역을 소비할 때 그 만족감은 갈수록 낮아진다. 예를 들어 갈증이 나는 이가

물을 계속 마시면 마실수록 물을 마시고자 하는 욕구와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이라 이야기한다. 앞선 예시를 다시 봤을 때, 만일 쿠키가 무한대로 

주어지는 상황이라면 한계효용 체감에 따라 쿠키에 대한 만족감은 점차 떨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현재의

상황은 똑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계효용의 법칙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더 느린 속도로 만족감이 감소한다. 결국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을 얻는 것을 일생일대의 꿈으로 삼지만, 

막상 무한대의 옵션이 제공되면 우리의 만족감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이다.


다음은 무한리필 매장의 대략적인 두 가지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 보기로 한다.


음식 종류가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이유

무한리필 매장의 특징 중 하나는 음식의 종류가 많지 않거나,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고기부페에서는 고기를 제외한 다른 음식들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뷔페와 패밀리 

레스토랑의 샐러드바 등에서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수십 종류에 이른다.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의 종류를 많이 두지 않으면 사람들이 한두 가지 음식에 집중해야 하여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음식을 소비하는 효용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 똑같거나 비슷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맛보면

음식을 먹는 만족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활용하여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최대한 줄인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음식의 종류를 매우 많이 두게 되면 지나친 선택으로 인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결국 선택을 포기하고 제일 맛좋은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어 한계효용을 낮출 수 있다. 뷔페는 우리에게

실컷 먹으라며 다양한 선택지를 내밀지만, 사실상 우리는 선택지에서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특정한 음식을 고르는 결과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무한리필 매장에서 소비하는

양을 조절하라는 것은 소비자에게 강요를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넛지는

꽤 효과적인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식이 주방의 바깥쪽에 있는 이유

무한리필 매장의 음식은 거의 대부분 주방 안에서 만들어져 주방 밖으로 배치되어 있게 되어 있어

사람들이 직접 음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선택에 관한

심리적인 요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선택에 관한 심리적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해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만족을 느낄까, 타인이 선택한 것을 받을 때 만족을 느낄까.


자, 다음 두 옵션을 비교해 보자. 당신은 어느 옵션을 선택하겠는가?


A : 고기의 양을 자기가 직접 선택하는 옵션

B : 고기 200g을 주방에서 가져다 줌


당신은 당연히 A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자신의 기호대로 고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A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A에서 담은 고기의 양이 200g보다 작더라도

우리는 B가 아닌 A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보통 자신의 선택을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선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A라는

옵션은 선택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이 대부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담은

음식이 양이 어떻든 관계없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만족감이 높아지면 보통 사람들은 부족함에 대한

욕구를 더 빠르게 채울 수 있고, 부족함에 대한 욕구가 빠르게 채워지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리필 행위를 더 빠르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리필 매장에서 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은 하나다. 무한리필 매장에서 무한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매장에 방문하여

각자의 할당량을 '유한' 하게 채운 뒤 계산을 하고 나가고, 매장의 사장도 식재료를 무한히 구매하지 않고

'유한' 히 구매한다. 단지 한 사람이 먹기에 많아 보이는 양일 뿐이고, 많은 음식이 그저 놓여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한', '리필' 이라는 말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듯 보이고, 흔히 말하는 '가성비' 라는 계산에 있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장을 방문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매장에서 보이지 않는

선택설계를 통해 자신의 선택에 더 만족감을 느끼고, 그들이 의도했던 대로 더 빨리 나가 다음 손님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거나, 더 빠르게 포만감을 느끼게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 아닐까?



무한리필이라는 말보다는 사실 양의 선택을 우리에게 맡긴 

식당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이렇게 먹으면 장사가 잘 될까? 라는 걱정을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생존전략이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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