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마트 계산대에 숨겨진 넛지 전략
대형마트를 가게 되면, 물건을 가득 싣고 들어선 카트 위로 분주하게 물건의 바코드를 찍는 계산원들이 보이고,
멤버십 적립해 드릴까요? 29,94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등의 말들이 오간다. 이 곳은 바로 계산대이다.
그런데, 마트의 계산대에는 사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심리학적 설계가 들어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정답은 계산대를 나가는 곳에 답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마트의 계산대에 숨겨진 심리학적 설계들을
한 번 살펴보는 과정을 가져 보려고 한다.
알다시피, 마트는 당신이 최대한 더 많이 사도록 하기 위해 쇼핑카트의 크기를 늘리거나, 인체공학적인
설계를 바꾸거나, 매대의 위치를 절묘하게 바꾸는 등의 전략을 통해 최대한 많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당신이 계산대에 서서 줄을 기다리고 있을 때 흔히 건전지, 세정제, 껌, 초콜릿 등의
물건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이 굳이 계산대 앞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나 빠뜨리셨을까 봐 싶어서요
계산대 앞의 물건들은 당신이 차마 챙기지 못한 것 같은 물건들을 전시한다. 그 이유는 쇼핑을 하면서
이것저것 고르는 것에 심취해 막상 세부적인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매장은 그래서
건전지, 세정제, 간단한 먹을거리 등을 배치하여 고객에게 '빠뜨린 것 같으니 고르세요' 라고 유혹한다.
상대적 가격 비교
계산대 앞의 물건들은 앞서 당신이 구매한 물건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10,000원어치
고기를 산 뒤 3,000원짜리 초콜릿을 본다면 상대적으로 3,000원짜리 초콜릿이 저렴해 보이는 이유는
앞서 구매한 고기가 초콜릿의 구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계산대 앞의 물건의 가격이 높을수록 계산대 앞의 물건을 고를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대해 무감하기 때문. 예를 들어 3,000원에서 3,000원을
더 구매하는 사람과, 300,000원에서 3,000원을 구매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3,000원의 추가가격에 대해
그 민감도가 다른 것은 앞서서 소비한 물건들의 가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계산대의 실제 역할은 계산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한 물건을 다시 철회하는 상황을 최대한
막는 역할을 한다. 왜냐 하면 소비를 했다가 다시 환불을 하고 다시 다른 것을 구매하는 과정은 기업에게
썩 좋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계산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이 조금 있던 많이 있던 줄을 서야
하고, 그 줄이 사람이 많던 적던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계산대별로 줄도
일정하게 선다. 왜 그러는 것일까?
전제 ; 적당한 기다림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은 무의식적으로 구매행위에 희소성을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10분 동안 기다려 물건을 산 것과 바로 물건을 집어서 산 것은 상대적으로 물건에 느끼는 주관적인 희소
가치가 다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다림은 소비자에게 불만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계산을 할 때
줄을 30분이나 선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아마 마트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당신이 '시간' 이라는 요소를 일종의 교환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30분을 투자한 것이 내가 할인을
받은 가격보다 가치가 높다면 나는 마트를 벗어나 동네 슈퍼로 가거나 다른 곳을 갈 가능성이 높다.
뒷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요
줄을 세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뒷사람에 대해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적 요인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관습을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계산을 끝내는데 뒷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흔히 뒷사람을 위해 뒤에 아무도 없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행위를 마친다. 왜냐 하면 내가 늑장을 부린다면 뒷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
실제로 동네 마트에서 뒤에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계산 속도를 비교한 결과, 사람이 있을 때는 평균
74초를 기록한 반면, 사람이 없을 때에는 평균 103초를 기록했다. 또한 사람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사람들은 구매한 물건에 대해 물건을 바꾸거나 환불하는 일을 더 많이 했다.(사람 있을 때 2회 < 사람이
없을 때 15회) 이는 뒷사람이 생각보다 우리의 행동을 빠르게 만드는 또다른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뒷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조바심을 가지게 되고, 구매했던 물건을 바꾸거나 환불하는
상황을 되도록 잘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다른 것은 우리가 계산해야 하는 물건을 보통 안에서 보지 않고 계산대의 끝부분(사진에서는 오른쪽)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학적인 설계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심리적
상황에서 분석하면, 밖에서 가격을 볼 수 있는 구조는 소비자가 선택한 물건을 그대로 살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는 행동 때문이다.
물론 바코드를 찍는다고 해서 물건을 교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코드를 찍는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 물건을 내가 소유했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을 받게 되면서, 교환과 반품의 마음보다는 소비의
기쁨에 더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자는 카드를 받는 슈퍼와 현금을 받는
슈퍼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주일 동안(2017.9.4 ~ 11) 관찰하였는데, 바코드를 찍은 행동을 본 이들이
구매행위를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56명 중 1명), 바코드를 찍지 않았을 경우 현금을 내는 순간을
소유를 하는 순간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계산 전 물건을 바꾸는 일이 더 많았다.(52명 중 16명) 즉
바코드를 만든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바코드를 찍으면 구매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계산대를 바깥에다 둠으로써,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구매한 물건들을 잘 되돌아
보는 행동을 잘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살펴보는 내용에서 확실한 점은 계산대 속의 넛지는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도 있지만, 무의식적인
압박으로 인해 소비자가 스스로 대안을 선택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계산대라는 하나의 도구에도 사실 우리가 몰랐던 행동설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트는 매장의 구조부터 시식코너, 그리고 계산대까지.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산대에 가기 전 본인이 사야 하는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자.
만약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사야 할 것을 미리 사 버린다면
불필요한 과소비, 그리고 불필요한 시선을 마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