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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균 Jul 01. 2017

PC방에서 라면을 파는 이유

#1 PC방의 즉석식품에 숨겨진 비밀

PC방의 즉석라면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오랜만에 PC방에 왔다. 오버워치를 켜고 전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 못해 요동을 친다. 밥을 달란다.

카운터에 가서 라면을 어디서 사냐고 물어봤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즉석라면' 을 추천한다.

딱 보아하니 여의나루역에서 여의도 한강공원을 가는 초입에 들어가는 편의점에서 파는

그런 느낌을 동네 PC방에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주저하지 않고 밥과 즉석라면을 주문한 뒤, 5000원을 내고,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바로 라면을 가져다 준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근데 왜 PC방에선 즉석라면을 파는 걸까? 아니, 더 궁금한 건 PC방에서 제육볶음을 팔 수도 있고,

짜장면을, 혹은 짬뽕을 팔 수도 있을 텐데, 왜 PC방에선 라면과 같은 즉석식품만을 취급하는 것일까?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은가? (안 먹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늘은 PC방의 라면에 숨겨져 있는 치명적인 마성의 넛지를 살펴 보기로 한다.

이 사소하고 작은 은박지 속 라면 한 그릇엔, 사실 어느 누군가의 치열하고도 치열한 

심각한 고민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액권 고객을 늘리고 싶었던 PC방


PC방에서 정액권을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가격이 싸서, 혹은 고객이 그 매장의

단골이 되겠다고 암묵적으로 맹세하는 것. 경우가 전자이든 후자이든 정액권을 끊고 남은 시간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이 일정한 액수를 투자한 곳에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즉 굳이 PC방을 가지고 큰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PC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1시간만 하고 가는 사람들보다 정액권을 끊는 사람들을

더 늘리는 것이 장기적인 매출 증대를 위해 효과적일 것이다. 이미 PC방은 오락실이라는 문화공간을

대체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점점 포화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PC방에서 정액권을 끊는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 할 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를 하면 '배가 고프다' 라는 사실에 집중했다.


배고픔이라는 감정은 굉장히 참을 수 없는 욕망을 가져다 주는 존재 같아서, 참기가 참 힘들다.

왜냐 하면 배고픔은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 중 '식' 에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액권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컴퓨터를 하다 보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만일 PC방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들은 그들이 정액제로 끊은 시간 중 일부를 식사에 투자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래. 먹을 것을 가져다 놓자."


그렇다면 먹을 것을 쉽게 구매하기 위한 장소, 눈에 띄는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PC방 입구? 자리 중간?

그들은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입구에 있을 때, 자리 중간중간에 있는 먹거리 코너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발견이 되더라도 감시체계가 덜한 탓에 물건을 도둑맞는 경우도 흔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입구나 자리 중간중간이 아닌 다른 곳에. 그리고 그들은 답을 찾았다.

바로 계산대 바로 앞에, 먹거리를 놓았던 것이다. 그 당시 계산대는 창구에 일정한 돈을 내고, 잠시 동안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눈에는 라면과 과자, 음료수 등이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오래 컴퓨터를 하기 위해 먹을 거리를 구입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액권 사용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PC방에서 할애하게 되었다. 배고픔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니 더없이 좋지 않은가.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정액권 사용자의 사용시간은 늘어나고, 이에 더불어 오랜 시간을 있으려는 고객들의

발을 잡는 데에도 성공했다.


왜 밥이 아닌 라면을 팔았을까

PC방의 점주들이 치밀한 분석 끝에 라면을 판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라면을 팔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냄새' 가 아닐까 싶다.


만약 그대가 점주라고 할 때, PC방에서 굳이 식사를 제공한다면 든든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것도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굳이 라면을 골랐을까.

(물론 최근에는 PC방에서 볶음밥을 판다)


PC방의 라면은 대개 사람들이 허기를 느끼는 시간, 즉 식사 시간이나 식사 시간 사이의 간식 시간이

사람들이 많이 찾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기를 느끼는 시간에 라면을 구매했다는 것은 단순히

라면을 구매한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PC방이라는 공간은 칸막이가 사이사이 놓여 있지만,

1인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옆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라면 냄새로 인해

비슷한 허기를 느끼던 사람들은 '먹고 싶다' 는 바람을 형성하게 되고, 밖으로 나가긴 꽤 귀찮으니

자연스레 눈 앞의 라면과 즉석식품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것이 구매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구매행동이 이어지면 점주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발생하고, 더불어 고객유지를 할 수 있으니 이런

더할 나위 없는 소비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PC방의 라면이 가져다 주는 교훈

PC방의 라면, 더 넓게 말하면 즉석식품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곳곳에 놓여 있다. 이제 최근에는 PC방의

로그인 화면, 자동 계산대 앞, 그리고 내 자리로 지나가는 곳까지, 고객들의 동선을 따라 치밀하게 서 있다.

그들은 나란히 줄세워져 어느 누군가가 자신을 가져가기를 원하는 것마냥 우리 눈에 띌 수 있는 곳에

치밀하게 서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결정적인 이유는 비단 PC방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치밀하게 진열해 놓은 상점들의 예시로 일반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객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여 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팔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일례로,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옷가게는 '60% 할인' 등 할인정책을 엄청나게 내세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싸고 좋은 옷을 사려고 하는 잠재고객들이 분수 사이를 지나가고 인파 사이를 지나가는데

그들을 잡아야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지 않겠는가! 길을 가다 싸게 물건을 파는 옷가게는

당신이 우연히 마주친 상점이 아니라, 당신을 잡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세우고 당신을 당장이라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결국 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해 당신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넛지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넛지들을 통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PC방의 라면은 기껏해야 1,200원이지만, 그 라면이 시사하는 바는

12억 이상의 가치를 줘도 모자랄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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