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기 사진어플 '구닥' 에 숨겨진 넛지
어렸을 적, 우리는 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
우리는 불과 10년에서 20년 전, 사진을 필름으로 찍었다.
그 당시 필름카메라가 커버할 수 있는 사진의 숫자는 대략 20~25장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약 30MB의 작은 용량을 차지하는 사진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3일에서 5일 정도의 시간을 기다린 후 사진관에서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보정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진은 너무 밝게 나오거나, 누군가 눈을
감아서 사진을 지우고 싶어도 사진을 태우지 않는 이상 지울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던 시대를 지금으로 옮긴다면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좋은 사진 한 장을 위해 하루에 아낌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만약 스마트폰카메라와 필름카메라의 성능을 비교하라고 했을 때 누구의 손을 들 것인가?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그러한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는 앱이 오히려 사람들의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구닥(Gudak)' 이라는 앱은 필름카메라 콘셉트를 거의 그대로 구현하며 인화를 하는 과정이
무려 3일이나 걸리는 앱이다. 물론 예전의 기억을 다시 되살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지만
우리가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구닥이라는 앱은 이미 없어지거나 나오자마자 사람들에게 그저 잠시 있다
사라진 앱으로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대를 가볍게 역행해 버리는 기술에 열광하는가?
왜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5초의 시간을 포기하고 3일의 시간을 선택하는 행동을 택하는가?
그 이유는 '구닥' 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기가 막힌 넛지들을 구사했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람들에게 최적의 서비스가 되기 위해 구사했던 넛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넛지를 살펴보기 전, '전략적 다운그레이드' 라는 전략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략적 다운그레이드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더 오래된 버전으로 되돌리는 것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전이 지속되는 시대에서 옛날 버전으로 회귀를 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핵심적인 기술에 집중하고, 추가적인 기술이 필요할 때 유료과금을 유도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추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전략이다.
실제로 애플에서 출시했던 '아이팟 셔플' 은 전세계적으로 1억 대 이상이 팔린 히트작이다.
이 mp3의 기능은 단순하다. 음악을 랜덤으로 재생시켜 주는 기능밖에 없다. 액정이 없어
어떤 음악을 들을지를 선택할 수 없어 불편하지만 음악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특성 때문에
엄청난 흥행을 몰고 왔던 제품이다. 전략적 다운그레이드를 사용하는 단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과금체계를 신경쓰고 전략적 다운그레이드 전략이 실질적으로 불러오는 장점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쓰면 그만이고, 안 쓰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이 전략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
왜냐 하면 오늘의 넛지의 핵심은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것이 옳은데,
왜 굳이 기술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선택하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다운그레이드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그 당시에 대한 추억을 환기해주는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팟 셔플은 사람들에게 하여금 '액정 없이 음악을 듣던 시대' 를 환기시켜 준다.
그들이 집중한 건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제품을 통해 또 하나의 경험을 불러왔던 것에
그들은 온 정신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략적 다운그레이드에서 선호하는 방향이다.
그 시대를 환기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순수함', '변하지 않은 나 자신' 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시대 그들이 순수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했던'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통 추억이란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억들로 점철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다운그레이드 전략을 사용한 것은 구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제품을 만들기 전,
기존의 사진보정 앱처럼 제품의 기능에 무엇인가를 강조하는 것은 차별화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필름카메라' 를 주된 소재로 한 앱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필름카메라를 쓰시고 추억을 남겨 보세요' 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24장짜리 필름카메라를 단순히 구현한 앱보다는 보정하는 도구가 많은 앱을
더 선호하려고 할 것이다. 굳이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세가 된 마당에 시대를 역행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꽤 무모했던 것이고,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사진을 찍고, 옛날 필름 스타일로 보정을 하는 것이 전혀 감흥이 없단 점을
발견했다. 보정을 하면 좋은 사진을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좋은 사진을 얻었다는 감정은 길어야
5분 뒤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구닥은 그 감정을 극대화시키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필름카메라 자체를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결정적으로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사진을 인화하는 데 '3일' 이라는 시간을 두었다. 그들이 3일을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과거에 그렇게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과거를 환기하고 추억을 소환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구닥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고, 열성적인 고객이 되길 바란 것이다.
그리고 이 넛지는 대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사람들이 스스로 사진을 찍으면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면서 제품을 스스로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필름카메라의 추억이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좋아요. 한 번 써보세요' 라는 말 없이도, 3일이라는 과거의 추억 가득한 시간을 설정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앱에 접근하도록 했다. 고객 후기 중에는 '3일의 시간을 기다리는 게 너무 설레요.'
'24장만 쓸 수 있다 보니 필름을 아끼게 되고 사진에 대해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더라구요' 등이
구닥의 후기란을 뒤덮었다. 10초도 느림을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3일이라는 시간도 거뜬히 기다린다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5초의 시간(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3일의 시간(필름카메라의 시간)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강조했던 건 제품의 기능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를 향한 추억을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일까?
해답은 여러분에게 있다.
우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합리성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닥이라는 앱을 통해 다시금 느껴라. 우리는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매일매일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