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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코더 Nov 30. 2020

노트북이 고장 난 후에

끝임없는 삶의 거절들

노트북 고장


 토요일 저녁쯤이었나 언제나 그랬듯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의식의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 관련 내용을 저녁 작가와 엮어서 글을 마무리 짓던 중 마시던 제로콜라를 키보드 자판 위에 한 모금 정도 실수로 흘리게 되었습니다. 나름 컴퓨터 잘하는 개발자답게 즉시 전원을 끄고 노트북을 거꾸로 세워서 물을 빼고 마른 휴지로 닦은 다음 드라이기 차가운 바람으로 오랜 시간 말렸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정도 거꾸로 눕혀놓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건조를 시켰습니다.


 월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AS센터를 갔지만 금세 콜라의 검은 물이 메인보드까지 침입했고 결국 몇 개 소자를 태워서 43만 원에 달하는 교체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더 운이 나쁜 건 부품도 없어서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쓰고 있던 나의 내 종이책 원고들은 당장에 깜깜한 하드디스크에 갇힌 체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멈춘 후에


 요즘 참 글 쓰는 게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태블릿을 세로로 세워서 듀얼 모니터로 한쪽에는 글을 다른 한쪽에는 웹서핑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저번 주에는 즐겁게 글도 잘 써지고 저녁 작가 프로젝트 작가님들과 수다도 떨면서 1차 회의도 잘 마무리하고, 2개나 동시에 진행되는 종이책 원고도 술술 잘 풀려 나가고 있는데..


 불행한 일인지 다행인지 최근 반년 넘게 달려왔던 글쓰기에서 휴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시간을 돌이켜보면 글쓰기는 나에게는 탈출구와 같았습니다. 폭발하는 생각을 잠재우는 진통제라고 할까요. 아니면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는 감기약이라고 해야 할까요. 힘든 일을 겪는 요즘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내면의 생각들이 잔인하지 않게 바뀌어 버리지 않도록 싸울 수 있던 힘을 주었던 글쓰기가 멈추어 버렸습니다.


 10년 넘게 사용하던 HD급 화질의 노트북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자판, 자꾸 꺼져버리는 크롬, 작아져 버린 해상도에 좁아진 나의 글자들이 한숨이 나옵니다. 나 스스로를 저녁 작가라고 말하고 이를 전파할 정도로 습관화했던 글쓰기는 언젠가 다시 고물이 되어갈거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항상 내가 가장 좋을 때마다. 즐겁게 웃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신은 내가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던 것을 끊어 버리고는 했습니다. 항상 신나는 마음을 가지고 웃고 있으면 시비를 걸던 사람들, 자랑스러워했던 것들이 생기면 더 좋은 것을 내 앞에 갖고 오는 친구들, 이제 좀 나도 인생이 살만하다 싶은 지금 느끼던 행복이 갑자기 불행으로 바뀌어 버린 최근의 사건, 아픔 마을을 위로하는 글쓰기가 근육 속에 깊게 베일 때쯤 일어난 노트북 고장장은 인생의 최고의 그래프에서 자주 일어났던 거절과 일맥상통 한거 같습니다. 



이유를 두고 찾아오는 것일까?


 "한계에 다다른 40살의 솔개는 더 살기 위해 먼저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깬다. 그 뒤 새로운 부리가 나오면 발톱을 모두 뽑아내고, 다시 발톱이 나면 깃털을 모두 뽑아낸다. 그렇게 가벼워진 날개와 새로 난 부리, 발톱으로 남은 30년의 생을 더 살아간다."

 진실 여부는 모르지만 수능을 앞두고 들었던 솔개의 '환골 탈태'라는 우화입니다. 새로운 절반의 인생을 위해 다시 태어나기 위한 극복의 상징으로 들려오던 이야기입니다. 늙어버린 육체를 다시 일깨워서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좋은 조언을 주지만 스스로가 한계를 깨닫고 했을 때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지인들에게 열심히 산다 하면 저 고코더를 뽑을 정도로 항상 내 일에 대해 열심히 몰두 해왔습니다. 그런데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것을까요? 아니면 원래 세상은 웃고 있는 광대와 같은 사람에게는 매정했을까요. 항상 이렇게 무언가 차단되어 버려갑니다. 끝임없이 일어나는 나의 삶의 거절들은 무엇을 향해 있을지 고민합니다. 

 

 노트북 고장이라는 핑계로 인생의 불행들을 들추었던 시간들을 글로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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