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쓰기를 미룹니다. 고의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미뤄집니다. 직장인 작가는 컨디션 조절을 조금만 실패하면 일주일고, 한 달이고 시간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본의 아닌 미루는 글쓰기라는 핑계가 생겨버립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미룬 죄책감이 밀려오고 오늘도 전 '매일 글쓰기'라는 절재적인 진리를 어긴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숙제를 미루는 건 분명 혼이 날 일이지만 글쓰기를 미루는 건 정말 잘못된 습관일까? 미뤄놓았던 글들을 다시 꺼내어 한번에 쓰는 방법은 나쁜 것일까요? 미루는 것이 정말 나쁜 건지 그 의문을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국의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했던 명연설입니다. 이 연설로 미국인들에게 인종 차별 문제를 일깨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국 인권 운동의 발전을 앞당기는 데 큰 일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킹 목사는 연설을 완성하는데 미루기 효과를 활용하였습니다. 연설의 주제나 방향을 확정하고 싶은 유혹을 참으면서 말이죠. 그의 연설의 초안을 작성한 '클래런스 존스'에게 연설문 최종안을 쓰게 했을 때 미루는 습관은 존스가 쓸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아이디어 중 하나는 넉 달 전 약속어음에 서명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어음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은유법으로 쓰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음'에 대한 표현을 연설 초반에 사용하여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공화국의 설계자들이 헌법과 독립선언의 장엄한 문장들을 기초할 때, 그들은 모든 미국인 하나하나가 이어받게 될 약속어음을 쓴 것이었습니다." -마틴루터킹 연설 中-
이처럼 완성을 미룸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시간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1503년에 작업을 시작했으나, 십 년 넘게 작업을 미루는 상태로 내버려 두다가 1519년에 완성하였습니다. 미룸의 효과로 걸작이 탄생했는지는 미지수지만 오랜 미룸 후에 걸작이 탄생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이가르니크 효과를 이용한 직장인의 미루는 글쓰기
"첫사랑은 기억에서 오래 남는다."
여러분의 첫사랑도 기억에서 맴도시나요? 여전히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건 '자이가르니크 효과(Zeigarnik Effect)'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있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을 바로 '자이가르니크 효과 '라고 합니다.
직장인 작가는 미루고 싶지 않아도 글쓰기를 미루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 프로젝트 막바지에 들어가 매일 밤 11시에 퇴근한다면 글쓰기는 자동적으로 미루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컨디션 조절이 실패하면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글쓰기보다는 생계가 중요하므로 회사에 더 집중해야 할 처지가 됩니다. 그렇다면 미루는 글쓰기가 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하는 것입니다. 우선 쓰고 싶은 글을 써놓습니다. 그리고 써놓고 완결을 짓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 둡니다. 그러면 계속 떠오르는 생각들이 맴돌고 그럴 때마다 조금씩 덧붙여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퍼즐 조각처럼 하나 둘 내용들을 덧붙이다 보면 어느새 글 하나가 완성되게 됩니다. 미루지 않고 초반에 글을 완성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찬 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이 글은 1년을 미뤄놓은 묵은 글입니다. 미루는 글쓰기가 딱히 나쁜 게 아닌 거 같은데 마땅한 근거가 없어 미뤄놓다가 최근에 읽은 '애덤 그랜트'에 '오리지널스(Originals)'에 제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들을 발견하였고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직장인 작가 여러분! 충분히 미루고 천천히 좋은 글들을 만들어 가도 늦지 않습니다. 열정과 언제든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처럼 때를 기다린 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