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을 싫어한 이유, 하지만 용기 낸 이유

걱정 너머에는

by 고코더

지중해의 선물, 포지타노

포지타노

"스페인, 이탈리아, 후쿠오카, 말레이시아, 마카오, 홍콩, 베트남"


올해에만 벌써 6개의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까지 갈 예정이었지만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10년 된 경차를 떠나보내고 새 차를 사야 했기에 올해 여행은 아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여행지를 뽑자면 이탈리아에 포지타노였습니다. 이곳은 가는 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렌토에서 포지타노로 가기 위해 시타(Sita) 버스를 탔습니다. 바다에 빠질 듯 굽어지는 해안도로를 아슬하게 타고 가고 있던 중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섰습니다. 무슨 일인지 주변을 둘러봤더니 반대쪽에 도로에 버스가 1차선뿐이 되지 않는 좁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하게 비껴갑니다. 이동부터가 예사롭지 않는 도시입니다.


그렇게 묘기를 부리듯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탁 트인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버스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러댑니다. 순간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이 했던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포지타노가 나를 깊숙이 물었고, 호텔 방 작은 발코니에 서면 푸른 바다 너머로 전설의 인어가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는 사이렌 섬이 보인다" 존 스타인벡의 마음과 영혼을 끌어당겼던 그 도시 포지타오에 입성한 것입니다. 포지타노는 절벽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이 절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마치 과거로 중세시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의 이 도시는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속 여행지입니다.



걱정 환자가 여행을 싫어했던 이유

비행기

여행을 싫어했다는 제목과 달리 제가 너무 포지타노 여행기를 신나게 풀어놓은 거 같습니다. 저는 30대 전까지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무료 해외워크숍도 있었지만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돈 걱정? 시간 걱정? 물론 그 걱정도 있었지만 진짜 걱정은 수 시간 동안 앉아서 가야 하는 비행기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좌석 때문이었습니다. 옆에 불쾌한 누군가 앉으면 어쩌지?라는 단순한 걱정 때문입니다. 옆 승객이 너무 뚱뚱한 분이 앉아서 자리가 좁을까 봐 이국적 냄새나는 외국인이 앉아서 머리가 아플까 봐 시답지도 않은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제가 가장 불쾌한 승객은 나였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매몰되면 정말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대의를 잃고는 합니다. 바로 저처럼 말이죠. 친구들은 긴 방학을 이용해 유럽 일주를 하고 미국 횡단을 하는 동안 저는 그냥 동네 산책에 충실했습니다. 공덕역부터 홍대까지, 공덕역부터 명동까지 한국에 방문한 관광객처럼 구경을 하고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재밌었는 나중에는 역시 시들해지더군요. 그렇게 걱정 하나 때문에 여행을 포기한 20대는 이제 30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해외 블로거가 쓴 글을 보고 용기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버즈피드에 일하고 있는 마이크 스포어(Mike Spohr)가 쓴 "나이가 들면 후회되는 37가지"라는 글이었습니다.


* 나이가 들면 후회되는 37가지(마이크 스포어(Mike Spohr)

01. 기회가 있는데도 여행하지 않았던 것.

02.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던 것

03. 악연을 남겨두는 것

04.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던 것

05. 좋아하는 음악가를 만나지 않은 것

06. 어떤 일을 무서워한 것

07.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08. 남성, 여성의 역할에 갇혀서 산 것

09. 끔찍하게 싫은 직업을 그만두지 않은 것.

10. 학교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11.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것

12.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13. 부모님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

14. 젊은 시절 나에게만 몰두해 있던 것.

15.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쓴 것.

16. 나보다 다른 사람의 꿈을 우선시한 것.

17. 더 많이 움직이지 못한 것

18. 원한을 품고 사는 것

19. 나 자신을 옹호하지 않은 것.

20. 충분히 봉사하지 않았던 것.

21. 치아건강을 소홀히 한 것.

22.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보지 않았던 것

23. 너무 열심히 일한 것

24. 멋진 요리 하나를 배우지 않은 것

25. 감사한 순간을 위해 잠깐 멈추지 않았던 것.

26. 시작한 것을 끝마치지 못한 것.

27. 재밌는 파티 마술 하나를 익히지 못한 것

28. 사회적 기대에 나를 맞추며 산 것

29. 친구들이 자기 길을 못 가게 붙잡은 것

30.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주지 못한 것

31. 한 번도 큰 위험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특히 사랑에 있어서)

32.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계를 넓힐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

33. 너무 많은 걱정을 했던 것

34. 쓸데없는 드라마에 빠져 있었던 것.

35.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것

36.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번도 공연해보지 못한 것

37. 좀 더 빨리 감사해하지 않았던 것


37가지 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Not traveling when you had the chance(기회가 있을 때는 여행을 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떠날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로 시작한 여행, 그리고 교훈


Sweet After Bitter
여행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누구나 혼자서 여행을 해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어요. 여행을 통한 자아 성찰은 고독력을 키워주고 더 나아가 인간적인 성숙도를 높여줍니다. 저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동반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연장이자 긴장의 연속이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은 온전히 자신의 욕구에 집중할 기회를 줍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고 싶을 때 잡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지요.

- 김민식, 『외로움 수업』, 생각정원(2023) -


처음 간 여행지는 '베이징'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연습 삼아 가보고 싶었습니다. 첫 여행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비행기 옆좌석에는 아무도 안 탔었고 예약한 호텔은 무료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가장 꼭대기층 스위트룸에서 숙박할 수 있는 행운이 가득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큰 용기를 냈습니다. 이번에는 뉴욕입니다. 하지만 미국에 가는 비행기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10시간이 넘도록 뒤에서 의자를 발로 차대는 아이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악취를 풍기며 하품을 하는 낯선 사람등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뉴욕이란 도시의 문화는 저와 잘 맞았고 그때 체험한 공연, 재즈, 미술 등은 제 인생에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끔찍한 이동시간을 선물했던 뉴욕 여행을 기점으로 전 이제 돈만 시간만 있으면 무조건 떠나고 있습니다. 걱정 환자가 왜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걸까요? 이유는 "Sweet After Bitter (쓴 것 뒤에 단 것이 온다)"라는 속담의 교훈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고진감래(苦盡甘來)"입니다. 여전히 전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걱정이 앞섭니다. 앞서 말한 말도 안 되는 좌석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매번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절반의 확률로 편안하거나 불편한 비행 여행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편함과 시련을 견디면 반드시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 후로부터 걱정과 동행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잠깐! 방구석에서 하는 여행을 소개해드립니다.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황홀한 체험입니다. 하지만 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그래서 여행을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의 분들을 위해 돈도 들지 않고 당장 가능한 여행을 잠깐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내 방에서 출발하는 여행'입니다. 이 내용은 '김병수 의사'의 '겸손한 공감'이란 책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합니다.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귤을 생각하면 침이 고이는 것처럼 감정과 강하게 밀착된 이미지가 떠오르면 더 강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발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무대에 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라는 문장을 읽어보라고 했을 때와 이 장면을 실제처럼 머릿속에 그려보라고 했을 때, 어느 경우에 심장이 더 빨리 뛸까? 당연히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다.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을 글로 읽는 것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상상할 때 우리 몸은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런 원리로 김병수 선생님은 심상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유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가고 싶은 휴가지의 풍경 사진 30장 정도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고 스치듯 넘겨가며 서너 번 반복해서 본다. 그리고 난 뒤에 눈을 감고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듯이 그 이미지들을 떠올려본다. 황금빛 태양이 몸을 감싸는 촉감을 느끼고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풀숲의 내음을 맡고 있는 자기 모습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상상해 본다. 생생한 감각들을 일깨워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눈을 감고도 여행의 감각들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된다. 상념은 사라지고 여행을 떠난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작은 방에서 지겨운 서류만 들춰 보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눈을 감아보자. 평화롭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상상 여행을 떠나보자. 심상에 맞춰 자기감정도 평화롭고 아름답고 부드럽게 변해갈 것이다."

- 김병수, 『겸손한 공감』, 더퀘스트(2022) -


이렇게 심상여행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방구석에서 떠나는 작은 여행도 매력적인거 같습니다. 방구석 보다는 한발자국 문밖을 나서고 싶은 분은 이런 여행은 어떨까요? '최대호' 작가님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는 너에게"에게서 수록된 작은 피크닉을 즐기는 방법입니다.

" 나의 행복은 날이 좋을 때 피크닉을 가는 것이다. 거창하게 피크닉이라 이름 붙였지만 별것 아니다. 그냥 접이식 의자 두 개와 작은 탁자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긴다. 그리고 무슨 뷰여도 상관없으니 시야가 탁 트이는 곳으로 가서 의자를 펴고 앉아있는 게 전부다. 친구가 이런 피크닉이 좋다고 계속 말해줬지만 난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면서 앉아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 여유를 즐기는 시간에는 어떤 조건도 붙지 않는다. 바랄 게 아무것도 없다. 좋다. 말 그대로 ‘그냥 다 좋다.’ "

- 최대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는 너에게 』, 떠오름(2021) -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느끼는 여행도 좋지만 방에서도 혹은 가까운 쉼이 있는 장소에서 여행이란 기분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작은 여행으로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인생이 네게 레몬을 주면, 저글링을 하라

레몬

"When life hands you a lemon, make lemonade (인생이 네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유명한 영어 속담입니다. 직역하자면 인생이 네게 레몬(고난)을 주면, 레모네이드로 만들어 먹어라 정도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인생의 어려움이나 장애물을 훌륭하게 극복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걱정이란 레몬을 주면 3개씩 집어 들어서 레몬을 공중에 던지면서 엇갈리게 돌리는 저글링을 합니다. 걱정 따위 장난거리처럼 휙휙 던지면서 놀아 버리죠. 그래서 무언가 하기 전 겁먹은 마음으로 걱정이 생기면 혼자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좀 고생하고 놀면 재밌겠네!", "또 재밌는 상황 만나면 글감이 되겠네!"이라며 놀잇감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레몬이 저글링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걱정을 받아들이고 용기로 한 발을 내디뎌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걱정 끝에 오는 즐거움을 느껴본다면 걱정이란 가림막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실천해볼까요? 오늘 드는 걱정을 한번 꺼내보세요. 이왕이면 3개 정도 꺼내서 저글링을 하면서 장난스럽게 걱정을 대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치 서커스 단원 처럼 저글링을 돌리다 보면 즐거운 날이 펼쳐질지 모르니깐요



인생이 네게 걱정을 주면, 용기로 저글링을 하라





* 출처

- 김민식, 『외로움 수업』, 생각정원(2023) -

- 김병수, 『겸손한 공감』, 더퀘스트(2022) -

- 최대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는 너에게 』, 떠오름(2021) -

- https://www.buzzfeed.com/mikespohr/37-things-youll-regret-when-youre-old

- https://www.segye.com/newsView/20201126520630?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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