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나 자자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어릴적 국민학교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 한구절입니다. 가사만 들어도 절로 흥얼거려집니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은 해방 된 이듬해 였다고 합니다. 노래의 가사를 지은 윤석영 선생님은 미래의 일꾼인 어린이들이 밝고 희망찬 미래를 이끌고 나갈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게 미덕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늦잠'을 자면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하루에 두 시간만 활동하고 나머지 스물두 시간은 꿈속에서 보내겠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그런데 저는 잠이 너무나 좋습니다. 만약 부자가 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침대에 최고급 매트릭스를 깔고 그 위에는 오리털 이불을 덮고 방안에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는 시스템을 설치하여 가장 안락한 수면 환경을 조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급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해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 달빛 (Clair de lune)'을 아주 조용하고 잠잠하게 틀어놓고 창가에 불어오는 파도소리와 바다내음을 테라피 삼아 15시간 이상씩 잘렵니다. 아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그런데 제가 잠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간혹 지인들에게 "넌 도대체 언제 자?"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칭찬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이지만 제가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살아갈 만큼 바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발자로 작가로 강연자로 너무 다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잠도 안 자고 맨날 밤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글 쓰고 코딩하며 코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런데 전 잘 잡니다. 글을 쓰다가도 저녁 12시가 넘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컴퓨터를 꺼버리고 자버립니다. 내일이 원고 마감일지라도 "에디터님한테 혼나고 말지!"라며 그냥 잡니다. 코딩도 똑같고 강연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졸리면 그냥 잡니다. 특히 걱정이 많은 날에는 아예 초저녁부터 잡니다. 그럼 무슨 걱정이었는지 생각도 안 날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을 복구하는 잠
잠은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할까요? 잠이 우리 삶의 미치는 영향들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잠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명력 보존의 수단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앨런 레치 세픈(Alan Latch Cefn)' 박사는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실험용 쥐가 잠이 들려고 하면 회전하는 턴테이블에 올려 수면을 방해하였습니다. 결과는 쥐는 3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과학교수 '매슈 워커(Matthew Walker)' 박사 연구팀은 "잠이 부족하면 사리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뇌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전두엽의 기능이 둔화되는 반면 원시적인 욕구, 감정, 동기 등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크게 활성화된다"며 폭식을 유발해 비만의 한 원인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의 저자 '맷 워커'는 버클리 심리학과 산하의 "인간수면과학연구소"의 섭립자이자 책임자입니다. 그는"수면은 당신의 초능력입니다"라는 주제로 테드(TED)에서 잠의 중요성을 강연하였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수면 부족이 생식기능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합니다. 매일 다섯 시간을 자는 남자는 일곱 시간 이상 자는 남자보다 고환이 눈에 띄게 작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을 때 우리의 몸과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실험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실험 내용은 이러합니다. 피실험자들을 모아 두 분류로 나눕니다. 잠을 8시간 이상 충분히 잔 그룹과 아예 잠을 자지 않은 그룹 잠을 자지 않는 그룹은 낮잠과 카페인도 통제합니다. 다음 날,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게 하고 그동안 MRI스캐너로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잠을 자지 않은 그룹의 기억 저장능력이 약 40%가량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그룹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를 우리 뇌 속에 있는 '해마'라는 기관의 활동유무에서 찾습니다. 해마는 간단히 말하면 단편적인 경험들을 '기억'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이 해마의 활동이 더뎌지게 된 것입니다.
하버드의대 연구진은 수면과 죽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기 위해 실험을 합니다. 뇌신경세포인 뉴런을 열에 민감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과일 초파리들을 따뜻한 방에서 사육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불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노랑초파리들의 불면 상태가 열흘 이상 지속하면 폐사율이 급격히 상승해 보통 40일의 수명을 지닌 이들 초파리는 20일 만에 100% 죽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수면을 하지 못하는 건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가장 끔찍한 고문 중 하나가 바로 '수면고문'이라고 합니다. 강제로 잠을 못 자게 하여 일명 사람을 말려 죽이는 고문으로도 활용하는 거 보면 정말 잠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잘 자는 방법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수 있을까요? 대한수면학회에서 제공하는 '수면 위생법(건강한 수면을 위한 지침)'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 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하십시오.
2. 낮에 40분 동안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잠자기 3-4시간 이내에 과도한 운동은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니 피하도록 하십시오.)
3. 낮잠은 가급적 안 자도록 노력하시고, 자더라도 15분 이내로 제한하도록 하십시오.
4. 잠자기 4-6시간 전에는 카페인(커피, 콜라, 녹차, 홍차 등)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시고, 하루 중에도 카페인의 섭취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카페인은 각성제로 수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5. 담배를 피우신다면 끊는 것이 좋은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잠잘 즈음과 자다가 깨었을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시 잠자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6. 잠을 자기 위한 늦은 밤의 알코올 복용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졸음을 증가시키지만, 밤늦게 잠을 깨울 수 있으며 아침에 일찍 깨어나게 합니다.)
7. 잠자기 전 과도한 식사나 수분 섭취를 제한하십시오. (간단한 스낵은 수면을 유도할 수 있으나 과식은 수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8. 잠자리에 소음을 없애고, 온도와 조명을 안락하게 조절하도록 하십시오.
9. 수면제는 매일,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0.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피하고 이완하는 것을 배우면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요가, 명상, 가벼운 독서 등)
11. 잠자리에 들어 20분 이내 잠이 오지 않는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독서, TV 시청 등을 하면서 이완하고 있다가 다시 졸리면 다시 잠자리에 들도록 하십시오. 이후 다시 잠이 안 오면 이러한 과정을 잠들 때까지 계속 반복하십시오. (하지만 기상시간은 아무리 간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도록 하시고 낮잠은 안 자도록 노력하십시오.)
잠이란 걱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축복
"잔다는 건 결핍과 욕망의 스위치를 잠깐 끄고 생명력을 충전하는 것. 잡념을 지우고 새로운 저장장치를 장착하는 것. 쓰라린 일을 겪고 진창에 빠져 비틀거려도 아주 망해버리지 않은 건 잘 수 있어서다. 잠이 고통을 흡수해 준 덕분에 아침이면 ‘사는 게 별 건가’ 하면서 그 위험하다는 이불 밖으로 나올 용기가 솟았다. 잠은 신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정희재,『아무튼, 잠』, 제철소(2022) -
다양한 문학 작품들 속에서 잠은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잠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잠은 걱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축복"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잠은 현실을 잠시 잊고 무의식이란 휴식처로 생각을 이동시켜 편안함 잠깐의 휴식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시인 피천득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천국에 잠이란 것이 없다면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정말 가지 않겠다" 만약 진짜라면 저도 천국에 가기 싫어질 거 같습니다.
"더 이상 잠들지 못할 것이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다! 죄 없는 잠을, 헝클어진 근심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을, 매일의 삶을 마무리시키는 잠을,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씻어주고 상처 입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명약을, 대자연이 주는 최고의 음식이자 인생의 향연에서 제일가는 자양분인 잠을!"
-셰익스피어 ‘맥베스’ 2막 2장 中-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Macbeth"에서는 맥베스 부부가 살인을 저지른 대가로 얻은 '형편없는 수면'이란 형벌을 받습니다. 위의 대사를 보면 잠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셰익스피어의 정의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대목 "헝클어진 근심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을" 이 부분을 보면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이라는 표현이 공감이 갑니다. 이처럼 잠은 잠 달콤한 신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잠이 걱정을 잊게 해 줄까요? 그럼 같이 이야기해봅시다. 걱정이 너무 많고 불안한 하루인가요? 마음이 힘들고 고독한 하루인가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하루였나요? 이런 그럼 이제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굿 나잇~
* 출처
- 정희재,『아무튼, 잠』, 제철소(2022)
- 세익스피어,『멕버스』
- 맷 워커: 수면은 당신의 초능력입니다, TED
- https://m.blog.naver.com/pmpspr/221846814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