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곰 효과
"여러분 지금부터 흰곰을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자 이제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흰곰이 떠오릅니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왜 우리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될까요? 1987년 이런 사고의 흐름을 궁금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 교수입니다. 그는 대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하지 말라!"라는 억압이 우리 사고에 어떻게 미치는지 실험을 합니다. A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라"라고 지시했고, B 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과는 놀랍게 B그룹이 A그룹보다 흰곰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사고를 억제할 때, 오히려 그것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흰곰 효과'라고 부릅니다.
청개구리와 시소
‘청개구리 이야기'라는 전래 동화가 있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가 시키는 것은 뭐든지 반대로 합니다. '개굴개굴'이라고 울라고 하면, '굴개굴개'라고 울어대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 속 이야기를 빗대어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청개구리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굴고 싶을까요?
우리의 머릿속에는 욕구와 억제가 타고 있는 시소가 있습니다. 이 시소는 수평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 뇌의 억제를 일으키면 시소는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면 뇌는 다시 시소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보정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위해 굶는 걸 결심한 사람은 금식에 대한 보정적 변화로 폭식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소를 수평으로 맞추는걸 항산성이라고 합니다. 항산성 덕분에 우리는 욕구와 억제를 조화롭게 만들어 줍니다.
흰곰 하면 코카콜라
그럼 걱정이 떠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면 흰곰이 떠오르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문제입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합니다. 흰곰이 떠오를 땐 코카콜라를 생각합니다. 왜냐면 코카콜라의 광고모델이 바로 하얀 북극곰이니깐요. 코카콜라가 북극곰을 내세워 겨울 광고를 하는 이유는 계절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여름에는 더위와 어울리는 시원한 느낌을 겨울에는 북극곰을 통해 추위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청량음료라는 이미지가 더해졌습니다. 이런 멋진 광고를 만든 사람은 '켄 스튜어트(Ken Stewart)'입니다. 그가 북극곰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유는 자신의 반려견 덕분이었습니다. 1992년 LA에 있는 사무실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중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던 중 이었습니다. 그때 강아지 '모건'이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고 그 순간 평소 곰을 닮은 모건을 통해 그때 북극곰이야말로 코카콜라의 시원하고 신선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마스코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북극곰이라는 CF모델을 발탁할 수 있게되었고 우리는 북극곰이 코카콜라를 시원하게 마시는 광고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왠 코카콜라 이야기냐고요? 그렇게 생각이 드셨다면 제 작전은 성공입니다. 이제 다시 백곰을 생각해 보실까요? 무엇이 떠오르나요?코카콜라도 함께 떠오르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특정 생각을 우회시키는 것을 '초점 전환(Focused distraction)'이라고 합니다. 실험에서는 코카콜라가 아닌 빨간색 폭스바겐을 떠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백곰의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생각하는 빈도가 훨씬 떨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점 전환은 떠오르는 걱정을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초점 전환
제가 초점 전환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 전환할 생각을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준비한 건 '주기도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배를 폐회할 때 성도들이 다 함께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그런데 저는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지만 주기도문은 여전히 헷갈립니다. 문장을 빼먹을 때도 있고 글자를 하나 바꿔서 할 때도 있고 아예 다음 절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초점 전환의 최적의 준비물입니다. 걱정이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올 때 주기도문을 활용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머릿속에는 주기도문이 적혀 있는 성경책을 펼치고 한 줄 한 줄을 머릿속 영상으로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외우다 보면 일명 정신이 팔려 있고 방금 전까지 올라오던 걱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초점 전환의 준비물은 '책 쓰기'입니다. 작가가 된 이후로는 매일매일 책을 쓰고 있습니다. 역시 걱정이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면 바로 머릿속에서 책 쓰기를 시작합니다. 보통은 어제 썼던 글들을 회귀하거나, 새로운 글감을 생각해 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손 위에 있다면 브런치로 남긴 초고들을 열심히 다시 읽습니다. 그리고 어색한 부분이나 오탈자를 찾아 수정합니다. 그렇게 "걱정이 올라온다 = 책을 쓴다"라는 공식을 만드니 집필도 재밌고 속도도 붙습니다. 지금 이 글 역시도 걱정이 올라올 때 찾아놓은 글감을 활용해 집필한 글입니다. 걱정 덕분에 책 쓰기 진도도 잘 나가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유 없이 갑자기 드는 걱정에게 이제는 감사할 지경이네요.
미리 준비하세요
자 이제 준비물을 준비해 봅시다. 초점 전환할 재료는 자유입니다. 이왕 할 거 의미 있고 재밌는 걸로 준비해 보세요. 갑자기 걱정이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배운 걸 실천할 때입니다. 머릿속에 준비물을 꺼냅니다. 그리고 생각의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다 보면 걱정은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 출처
- 전래동화 『청개구리 이야기』
- https://www.coca-colacompany.com/about-us/history/coca-colas-polar-b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