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더 단편 시리즈 4편
장례식장 접수대 직원이 물었다.
"추모 영상 서비스가 있는데 신청하시겠어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AI 메모리얼고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영상으로'
'기본 3분, 영상 19만원' 민재는 결제 버튼을 눌렀다.
"고인의 휴대폰을 맡겨 주시면 사진과 영상을 분석해서 내일 아침까지 완성해 드립니다."
아버지의 휴대폰을 꺼냈다. 케이스가 없는 낡은 스마트폰. 모서리가 닳아 은색 테두리가 드러나 있었다.
"비밀번호는 알고 계실까요?"
"모릅니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 폰에 볼 일이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충청도 읍내에서 철물점을 했다. 민재는 그 가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건 철물점 안이었다. 화요일 오후. 단골 손님이 나사를 사러 왔다가 발견했다. 민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영안실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직원이 USB를 건넸다.
"행복도가 가장 높은 스무 장면을 선별해서 편집했습니다. 미리 확인해 보시겠어요?"
민재는 빈소 옆 대기실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아버지가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들고 웃고 있었다. 이가 드러날 만큼 크게 다음 사진 철물점 앞 평상에서 동네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음 영상 등산 모임이었다. 정상에 선 아버지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 "박 사장 완전 젊어 보인다" 하고 말했고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스무 개의 장면 민재는 두 번 더 재생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스무 개의 장면 안에 민재가 없었다.
가족사진도, 졸업식도, 결혼식도 아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 영상과 함께 들어 있던 분석 리포트를 열었다.
아들과 관련 된 사진 38장
행복도 상위 20에 포함된 장면 : 0장
평균 행복도 : 43점
표정 분류: "긴장" 14장, "어색함" 11장, "무표정" 9장, "미소" 4장
하단 메모. 가족 관련 사진 중 가장 높은 것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58점)이나, 고인의 시선이 카메라가 아닌 식탁 위 음식을 향하고 있어 아들의 존재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민재는 서비스 측에 전화를 걸었다.
"영상에 가족 사진을 추가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수동으로 추가하시면 영상 전체의 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톤으로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행복도가 낮은 사진이 섞이면 영상 전체가 어두워집니다. 조문객분들 앞에서 트시기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재는 전화를 끊으려다 말았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직원이 잠시 멈칫했다. 매뉴얼에 있는 멈칫인지 진짜 멈칫인지 알 수 없었다.
"메모리 보정 서비스라는 게 있긴 합니다."
"뭡니까?"
"고인과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을 AI로 생성해서 영상에 삽입하는 서비스입니다. 고인의 얼굴, 체형, 습관적 자세 등을 분석해서 자연스러운 장면을 만들어 드려요. 기존 사진에 합성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생성하는 거라 어색함이 거의 없습니다."
"가짜 영상이요?"
"고객님들은 보통 '추정 기억'이라고 부르세요. 있었을 법한 장면을 복원한다는 개념이에요."
"얼마입니까?"
"19만 원입니다. 많이들 하세요."
많이들 한다. 민재는 그 말을 곱씹었다. 실제로 없었던 장면을 만들어서 장례식에 트는 사람이 많다. 그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와 있었다.
"하겠습니다."
네 시간 뒤에 새 영상이 도착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원래 영상 사이사이에 새 장면이 끼워져 있었다. 아버지와 민재가 낚시터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물고기를 들어 올리자 민재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웃고 있었다. 자연스러웠다. 어떤 사진이 진짜고 어떤 사진이 가짜인지 민재 자신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음 장면. 철물점 앞 평상에서 아버지와 민재가 나란히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가 민재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민재가 고개를 숙이며 웃고 있었다. 다음 장면. 식당에서 아버지와 민재가 마주 앉아 순대국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선은 순대국이 아니라 민재를 향해 있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행복도 몇 점짜리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영상 끝에 자막이 떴다. '당신의 곁에서 항상 행복했습니다.'
발인 시간이 됐다. 조문객들 앞에 스크린이 놓였다. 직원이 영상을 재생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 아버지가 낚시터에서 웃고 있었다. 그 옆에 민재가 앉아 있었다. 조문객 사이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아버지와 민재가 철물점 앞에서 나란히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많이 좋아했구만."
영상이 끝났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라는 사람이 다가와 민재의 손을 잡았다.
"낚시 같이 다녔구나. 아버지한테 들은 적은 없는데."
"가끔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찍은 사진이 많으니 좋다. 요즘은 영상으로 만들어주니까 더 좋고."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민재의 아내가 민재의 팔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낚시 사진 언제 찍은 거야? 나는 처음 보는데."
"예전에"
아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장례식장에서 더 묻지는 않았다.
빈소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영상 파일은 USB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원본 버전과 보정 버전 두 가지가 저장되어 있어요."
"원본이요?"
"네. 보정 전 영상이요. 아들분이 안 나오는 버전. 보관 여부는 고객님이 결정하시면 됩니다."
민재는 USB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참, 한 가지 안내 말씀드리면"
직원이 태블릿을 보며 말했다.
"메모리 보정에 사용된 AI 생성 이미지는 서비스 이용 약관상 라이선스 유효기간이 5년입니다. 5년 뒤에 연장 신청을 안 하시면 해당 이미지의 라이선스가 만료되어 열리지 않습니다.""
"5년이요?"
"네 연장 비용은 그때 가서 별도 안내드립니다."
죽은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 라이선스가 있었다. 유효기간이 있었다.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직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집에 돌아온 건 밤 열한 시였다. 아내는 먼저 들어가 있었다.
"씻고 자."
"응. 좀 있다가."
민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USB를 꽂았다. 폴더 안에 파일이 두 개 있었다.
'원본영상.mp4', '보정영상.mp4'
민재는 원본 영상 파일을 열었다. 아버지가 낚시터에서 웃고 있었다. 혼자. 철물점 앞에서 동네 사람들과 웃고 있었다. 민재 없이. 아버지의 진짜 하이라이트 아들이 없는 하이라이트. 닫았다.
이번엔 보정 영상 파일을 열었다. 아버지와 민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민재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었다. 그런데 따뜻했다.
민재는 원본 파일 위에 마우스를 올렸다. 우클릭. '삭제'가 떴다. 손가락이 멈췄다. 진짜 아버지가 들어 있는 파일이었다. 삭제를 누르니 영상이 휴지통 날아갔다.
다시 보정 영상 파일을 재생했다. 눈 안쪽이 뜨거워졌다. 울고 있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면서.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소파 뒤에 서서 화면을 봤다. 아버지와 민재가 식당에서 마주보며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내가 한참 보다가 민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빠랑 사이 진짜 좋았구나. 나는 몰랐네."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보?"
"......응."
아내가 화면을 조금 더 봤다. 낚시터에서 나란히 앉은 장면이 나왔다. 아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거 보면 마음이 놓인다. 나중에 우리 애한테도 보여주자. 할아버지가 아빠 많이 좋아했다고."
아내가 방으로 돌아갔다.
영상속에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AI가 만든 민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민재가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5년 뒤에 돈을 내지 않으면 이 얼굴은 사라진다.
'그런데 5년 뒤에도 이 돈을 내야 할까?'
화면이 저절로 꺼질 때까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실이 어두워졌다. 꺼진 화면 위로 영상속 아버지를 닮은 민재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