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돌봄

고코더 단편 시리즈 3편

by 고코더


수연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싫어하는 두부찌개 재료가 또 들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냄비에 불을 올리고 나서였다. 잠깐 멈췄다. 하지만 이미 물이 끓기 시작했다. 두부는 어차피 부드럽고 간을 세게 하면 모를 거였다. 포장을 뜯다가 두부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잠깐 내려다봤다. 집어 들었다.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구고 도마 위에 올렸다. 칼을 집었다. 썰었다. 냄비에 넣었다. 그냥 끓였다.


엄마 방으로 들어가 죽 그릇 옆에 찌개를 놓았다. 엄마는 침대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다. 왼쪽 팔이 이불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뇌경색 이후로 그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연이 숟가락을 엄마 오른손에 쥐어줬다.


엄마는 찌개를 한 숟가락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없어?"

"아니."


수연은 더 묻지 않았다. 퇴근하고 와서 만든 저녁이었다. 열한 시간 일하고 버스 타고 오면서 마트 들러서 만든 저녁이었다. 그것까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해도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다. 그게 더 힘들었다. 원망이나 감사나 어느 쪽이든 말이 있으면 버틸 수 있었다. 침묵이 제일 무거웠다.


엄마가 숟가락을 놓은 뒤 수연은 밥상을 치웠다. 그리고 엄마를 눕혔다. 왼팔을 조심히 위치시키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새벽 두 시에 한 번 들어가서 몸을 돌려줘야 했다. 욕창이 생기면 안 되니까. 수연은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날이 있었다. 눈은 떠지는데 팔다리가 침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다섯 분만, 하고 눈을 감으면 다음 알람이 울렸다. 아침 여섯 시. 네 시간을 놓친 거였다. 엄마 방에 들어가면 엄마는 깨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알람을 맞췄다. 다음 날도 못 일어났다.


엄마가 처음 쓰러진 건 이십 년 전이었다. 수연은 그때 스물한 살이었고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일 년을 기다리다 떠났다. 수연은 울지 않았다. 울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그럴 기운이 없었던 것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 그 사람이 없었고 그다음 날도 없었고 그렇게 이십 년이 지났다. 스물한 살에서 마른한 살이 됐다. 그 사이에 수연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케어봇이 처음 왔을 때 수연은 안도했다. 죄책감도 같이 왔지만 안도가 먼저였다. 복지관에서 신청한 지 삼 개월 만이었다. 돌봄 등급 1등급, 하루 여섯 시간.

복지관 담당자가 케어봇을 들여오던 날, 엄마는 침대에 누워 눈빛 도 주지 않았다. 담당자가 설명을 했다. 이름은 '나리'예요, 어르신 세대에 친숙한 이름으로 설정돼 있어요, 어색하면 다르게 바꿀 수도 있고요.


엄마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리?"

"네, 어머니."


케어봇이 대답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엄마는 한동안 케어봇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그 얼굴을 읽을 수 없었다. 오래된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봤자. 기계구나. 뭘 바라겠니."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천장을 봤다.


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계한테 뭘 바라는건지. 그럼 나한테는 뭘 바랐어. 그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에서 걸렸다가 내려갔다. 삼킨 게 아니라 그냥 가라앉았다. 요즘은 감정들이 그렇게 처리됐다. 터지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이 그냥 어딘가 쌓였다.


나리는 새벽에도 깨어 있었다. 깨어 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수연이 놓친 새벽 두 시에 엄마의 몸을 돌려놓았다. 정확히 두 시간 간격으로. 엄마의 체중을 들어 올리고, 베개를 무릎 사이에 끼워주고, 등 뒤에 쿠션을 대주었다. 수연이 두 손으로 겨우 하던 일을 나리는 흔들림 없이 해냈다. 엄마가 신음하지 않았다. 수연이 할 때는 조금씩 신음했는데.


나리는 기저귀도 갈았다. 수연이 가장 힘들어하던 일이었다. 손이 떨리는 것도, 엄마가 눈을 피하는 것도, 둘 다 아무 말 없이 견뎌야 하는 그 시간이 가장 길었다. 나리는 그 일을 하면서 목소리도, 속도도, 손길의 압력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의 피부 상태를 확인하고 연고를 바르고 시트를 교체했다. 분 단위로 체온과 혈압을 기록했다. 밤새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지치지 않았고, 거칠어지지 않았고, 새벽 네 시에도 낮 열두 시와 똑같았다.


나리는 밥을 먹일 때도 달랐다. 엄마가 숟가락을 들면 같이 기다렸고, 내려놓으면 같이 멈췄다. 재촉하는 법이 없었다. 삼킴이 느려지면 턱 아래를 부드럽게 받쳐주었고, 사래가 들리면 등을 쓸어주면서 고개 각도를 조절했다. 수연은 엄마가 밥을 느리게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릇을 더 가까이 밀거나 "한 숟가락만 더" 하고 말했는데, 나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엄마의 속도가 곧 나리의 속도였다.


엄마는 조금씩 나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연에게는 "응"과 "아니" 밖에 하지 않던 엄마가. 수연이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엄마 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수연이 방문을 열면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마다 수연의 가슴 어딘가가 아주 조금씩 단단해졌다. 돌처럼.


가을이 깊어진 어느 저녁이었다. 수연이 엄마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화면에 뉴욕이 나왔다. 가을의 센트럴파크. 노란 은행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수연은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려다 말았다.


엄마가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말했다.

"너 뉴욕 가는 게 소원이었잖아."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지. 공책에 영어 쓰고 다니고."

"엄마, 됐어."


"미안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낮았다.


수연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센트럴파크의 노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예뻤다. 수연은 그게 갑자기 싫었다.

"미안하면 뭐 해."

"......"

"그럼 아프지를 말던가."


그 말은 목구멍에서 올라온 게 아니었다. 이십 년 동안 가슴 바닥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새벽 두 시 알람 소리, 기저귀를 갈 때 서로 피하던 눈, 남자의 뒷모습, 매일 밤 혼자 끓이는 죽, 한 숟가락 뜨고 내려놓는 숟가락 소리. 그것들이 여섯 글자가 되어 나왔다. 아프지를 말던가.


방 안이 조용해졌다. 텔레비전에서 뉴욕의 거리 소음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에 묻히게. 이를 악물었는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물이 계속 흘렀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물을 잠그고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눌러 닦았다. 거울은 보지 않았다.


엄마 방에 돌아가지 않았다. 자기 방으로 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 뒤로 엄마는 수연에게 더 말이 없어졌다. 수연도 더 말이 없어졌다. 밥을 가져다주고 약을 챙기고 몸을 돌려주는 것까지는 했다.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나리가 있는 시간에는 더더욱 일찍 오지 않았다. 엄마도 수연이 오면 텔레비전을 껐다. 이제는 침묵이 무겁지도 않았다. 그냥 그게 둘 사이의 전부였다.


엄마 등에 욕창이 생긴 적이 있었다. 나리가 오기 전이었다. 수연이 새벽마다 일어나지 못한 날들이 쌓인 결과였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상처를 소독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이 수연에게는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나리가 온 뒤로 욕창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수연은 엄마 방 앞을 지나다가 나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뉴욕 일 이후 처음으로 엄마가 긴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

"알아요."

"아프지를 말던가. 그 말이 맞아.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야."


나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 거야. 맨날 늦게 와서 밥해주고. 나 때문에 그 아인 아무 데도 못 가고, 남자도 없고. 나는 그걸 알아."


수연은 방 앞에서 등을 벽에 기댔다. 발소리를 죽였다.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나쁜 짓인 것 같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나는 왜 그 아이한테는 이런 말을 못 할까."


나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조용한 사이에 나리가 엄마 몸을 돌리는 소리가 났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 쿠션을 끼우는 소리.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나리가 옆에 자리를 잡으면 늘 나는 소리가 있었다. 관절 부위에서 아주 작게 나는 낮고 고른 소리. 기계가 제자리를 잡을 때 내는, 숨소리 같은 것. 수연은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기계한테는 되는데. 이상하지."

엄마가 혼잣말처럼 작게 웃었다. 수연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벽에서 등을 뗐다. 방으로 걸어갔다. 불 끄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프지를 말던가.' 자기가 했던 말이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그대로 받아서 들고 있었다.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이라고. 그게 더 견딜 수 없었다.


엄마가 다시 쓰러진 건 겨울 초입이었다.


나리가 새벽 두 시에 알람을 보냈다. 호흡 패턴이 불규칙하다고. 수연은 자다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일어났다. 엄마 방으로 뛰어갔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했다. 구급차를 불렀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수연은 핸드폰만 내려다봤다. 나리가 보낸 알람 시각. 01:58. 수연이 확인한 시각. 02:35분.


엄마는 중환자실에 열흘 있다가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 수연은 매일 퇴근 후에 갔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수연도 말이 없었다. 과일을 깎아드리고 간호사가 달라는 것들을 챙겨드리고 밤 아홉 시쯤 병원을 나왔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리가 다시 왔다. 복지관에서 시간을 늘려줬다. 하루 24시간. 수연은 신청서 쓰면서 손이 조금 떨렸다.


그해 겨울이 길었다.

나리는 겨울 내내 엄마 옆에 있었다. 두 시간마다 몸을 돌리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이고, 가래를 흡인하고, 체온을 재고, 이불을 여미고. 엄마의 상태가 나빠질수록 나리가 하는 일은 늘어났고, 나리는 한 번도 느려지지 않았다. 수연이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 엄마 방 앞을 지나면 나리의 낮고 고른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엄마가 자는 동안에도 나리는 거기 있었다. 수연이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은 밤에도.


엄마는 겨울 끝에 돌아가셨다.

갑자기는 아니었다. 나리가 전날 밤에 알람을 보냈다. 호흡이 많이 얕아지고 있다고. 수연은 새벽에 병원에 갔다. 엄마는 의식이 흐릿했다. 손을 잡았다. 엄마의 오른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아주 조금. 손가락 하나 정도. 수연은 그걸 꼭 쥐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장례를 치르고 엄마 방을 정리했다. 나리는 복지관에 반납해야 했다.

수연은 반납 전날 밤에 혼자 엄마 방에 앉았다. 나리 앞에 앉았다. 방은 엄마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엄마가 쓰던 로션 냄새. 수연은 그 로션의 이름을 한 번도 몰랐다. 엄마가 화장대에 항상 올려둔 거였는데.

나리의 낮고 고른 소리가 방 안에 있었다. 엄마가 이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수연이 옆방에서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던 밤에도. 나리는 여기 있었다.


수연은 한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가... 뭔가 남긴 말이 있어?"


나리가 잠깐 조용했다.

"네."


수연이 고개를 들었다.

"기록을 남겨달라고 하셨어요. 저한테."

"언제?"

"석 달 전이요.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화면에 문장이 떴다. 나리가 읽어주지 않았다. 그냥 보여줬다.

"수연아. 나리 앞에서는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어."


수연은 화면을 오래 봤다. 글자들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수연은 그 문장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손을 들어 화면에 갖다 댔다가 내렸다. 유리 표면이 차가웠다.


일주일 후에 유언장이 왔다. 엄마의 재산은 많지 않았다. 지금 사는 15평 아파트 한 채, 예금 얼마. 수연은 그것들보다 맨 마지막 항목에 눈이 먼저 갔다. H케어 서비스에 일체를 기증한다. 수연은 문서를 두 번 읽었다. 세 번 읽었다.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엄마가 직접 작성하셨고 공증도 받으셨다고. 수연님도 물론 유류분 청구권이 있다고. 필요하시면 말씀해 달라고.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밖으로 나왔다. 겨울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수연은 걷다가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유리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마흔한 살이었다. 수연이 곁에 있는 매 순간이 엄마에게는 빚이었다. 그리고 감정 없는 기계 옆에서야 비로소 그 빚에서 풀려난 거였다.


수연은 편의점 유리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없는 집으로. 엄마 로션이 아직 화장대에 올려져 있는 집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방이 환해졌다. 조용했다. 나리의 소리도 없었다.


수연은 주방으로 가서 냄비를 꺼냈다. 냉장고를 열었다. 두부가 있었다. 엄마가 싫어하던 것. 수연은 잠깐 두부를 들고 서 있다가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칼을 집었다.



핸드폰 뉴스 피드가 울렸다.


[H케어, 시니어 돌봄 부문 누적 유증·기증 규모 전년 대비 340% 증가. "가족보다 먼저 알아주는 돌봄" 슬로건으로 시장 점유율 급성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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