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더 단편 시리즈 2편
형광등이 깜빡였다. 고시원 천장에 박힌 주광색 불빛이 한 달째 저러고 있었다. 관리실에 말하면 바꿔줄 터였다. 하지만 재윤은 관리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재윤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 덮개를 올렸다. 화면에는 '유서 작성 서비스'라는 이름의 AI 프로그램이 떠 있었다. 유료였다. 9,900원. 죽는 데도 만 원이 드는 세상이었다. 결제를 하기 전에 재윤은 캘린더 앱을 열었다. 11월 15일에 '아버지 칠순'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달 뒤였다. 칠순잔치 장소를 알아봐야 하나, 식당을 예약해야 하나, 죽으려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런 것들이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죽으면 이런 것도 안 해도 되겠지.'
결제 버튼 아래에 작은 글씨로 체크박스가 있었다. '유서의 정확성을 위해 수신자의 공개 정보 및 연동 가능한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재윤은 읽지 않고 체크했다. 죽으려는 사람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읽을 리가 없었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잔고가 12,340원에서 2,440원으로 줄었다. AI가 입력창을 띄웠다.
"유서에 포함할 내용의 키워드와 수신자를 입력해 주세요."
재윤은 타이핑을 시작했다.
수신자 1: '세상'에게 나는 개발자였다. 15년 동안 코드를 짰다. 그래도 행복했고 고맙다고 써줘. 적당히.
수신자 2: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 여자친구. 5년 사귀다 헤어졌어, 미안하다고 써줘. 너와 있을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수신자 3: '부모님'에게 불효자라고 써줘. 미안하다고. 칠순 못 가서 죄송하다고. 다음 생에 잘할게라고.
엔터를 누르자 AI가 잠시 로딩되었다. 화면 하단에 작은 원이 돌았다. 10분쯤 지났을까. 화면이 바뀌었다. 제목 아래로 짧게 정리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유서
1. 세상에 남기는 말.
나는 박재윤입니다. 서른여덟 살, 개발자였습니다. 3년 전 권고사직을 받았고, 이후 어떤 회사에서도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코드가 작동하는 순간의 쾌감을 알려준 세상에. 새벽 세 시에 버그를 잡고 모니터 앞에서 주먹을 쥐던 그 순간들이 전부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믿고 싶습니다.
2. 사랑했던 사람에게
5년 동안 함께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부모님에게
저는 불효자입니다. 다음 생에는 잘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재윤은 유서를 끝까지 읽었다. 깔끔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문장들이 마치 퇴사 인사 메일처럼 반듯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감동도 없었다. 그냥 '이 정도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저장하고, 메일 예약을 걸어두려는 순간 화면 하단에 알림이 떴다.
"유서 검증 리포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검증 리포트?'
재윤은 '확인'을 눌렀다.
'유서 검증 리포트는 사실 기반 분석 유서의 정확성과 완결성을 위해 공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에 남기는 말 검증]
유서 내의 박재윤 님은 "그래도 고맙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코드가 작동하는 순간의 쾌감"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합니다.
15년간의 경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검증이 어렵습니다. 박재윤 님이 작성한 모든 서비스는 종료 되었고, AI가 새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박재윤님이 기여한 프로젝트 중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는 0건입니다.
재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책상 구석을 보았다. 거기에 예전 회사에서 받은 머그컵이 있었다. '2019 Best Developer'라고 적힌 싸구려 머그컵. 퇴사할 때 짐을 싸면서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가져왔다. 커피 자국이 안쪽에 갈색 띠로 남아 있었다. 그게 15년의 흔적이었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였다. 어둠이 짧게 내려앉았다 걷혔다. 재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렸다.
추가 분석: 박재윤 님의 유서에는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믿고 싶다"는 표현은 실제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서의 정확성을 위해 해당 문장을 수정할 것을 권장합니다.
수정 제안: "전부 헛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남기는 말 검증]
유서에서 박재윤 님은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썼습니다. 수신자의 현재 상태를 확인합니다.
공개된 SNS 데이터에 따르면, 김지나 님(32세)은 현재 결혼 1년 차이며 지난해 첫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배우자는 공기업 재직 중이고, 대치동 소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게시물은 아이의 돌잔치 사진이며, 해당 게시물의 좋아요 수는 342개입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문장은 불필요합니다. 이미 행복합니다.
스크롤을 내렸다.
추가 분석: 김지나 님의 건강보험 심사 데이터(공개 범위)에 따르면, 박재윤 님과의 교제 기간 중 정신건강의학과 내원 기록이 확인됩니다. 우울증 진단 코드(F32)가 포함되어 있으며, 항우울제 처방 이력이 8개월간 지속되었습니다. 교제 종료 이후 해당 기록은 없습니다.
재윤의 손가락이 멈췄다. 알고 있었다. 지나가 잠을 못 자던 것도, 갑자기 울던 것도, 약을 먹기 시작한 것도.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다. 자기가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끝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다. AI가 그 모른 척을 데이터로 끄집어냈다. 우울증. 8개월.
박재윤 님과의 관계가 김지나 님의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유서의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 내용이 수신자에게 도달할 경우 회복된 정신건강에 재차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수정 제안: 해당 수신자에게는 유서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 수신자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재윤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형광등 빛이 깜빡이며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사랑했던 그녀에게 사과보다 나은 일이다. AI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손을 내리고 다시 화면을 보았다.
[부모님에게 검증]
유서에서 박재윤 님은 "불효자"라고 자칭하며 "다음 생에는 잘하겠다"라고 썼습니다. 해당 진술을 검증합니다.
박재윤 님의 부모 정보: 박종대(70세), 이명자(66세). 충남 천안 소재 거주. 아버지는 제조업체 현장 관리직 퇴직 후 경비원으로 재직 중. 어머니는 식당 보조로 근무 중.
박재윤 님이 자립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노후 파산 확률은 증가합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부모의 노후 자금은 아버지 나이 73세 시점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달 아버지한테 카카오톡이 왔었다. 사진 한 장. 칠순잔치 장소로 괜찮겠냐며 보낸 식당 사진이었다. 테이블이 여섯 개쯤 되는 작은 한정식집이었다. 재윤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읽씹이 한 달째였다. 형광등이 세 번 연속 깜빡였다. 깜빡이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추가 분석: 부모의 건강 데이터를 참조합니다.
아버지 박종대 님은 고혈압 및 당뇨 진단을 받고 있으며, 최근 3년간 약 복용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명자 님은 허리 디스크로 인해 통증 관리 중입니다. 의학 연구에 따르면, 성인 자녀의 경제적 미자립 상태가 부모의 만성 스트레스 수치를 평균 34% 증가시키며, 이는 심혈관 질환 및 면역 기능 저하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박재윤 님의 현재 상태가 지속될 경우, 부모의 기대수명이 단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음 생에 잘하겠다"는 표현보다 현생에서의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 유서의 정확성에 부합합니다.
수정 제안: "저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가 더 건강이 악화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스크롤 끝에, 예상하지 못한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참고 사항: 캘린더 데이터에 등록된 '아버지 칠순'(11월 15일) 관련 분석입니다. 천안 지역 칠순잔치 평균 비용은 약 120만 원이며, 박재윤 님의 현재 잔고(2,440원) 기준 집행이 불가합니다. 해당 일정은 유서 전달 이후 의미를 상실하므로 캘린더에서 삭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재윤은 그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죽는 데 9,900원을 쓰고 남은 돈이 2,440원이었다. 아버지 칠순잔치는커녕 편의점 도시락도 두 번 못 사 먹을 돈이었다. 그런데 그 2,440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죽으면 그 돈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무 데도 안 가겠지. 그냥 남겠지.
[종합 소견]
박재윤 님의 유서를 검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고맙다" 감사의 대상이 불명확합니다.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이미 달성된 사항이므로 불필요합니다.
"다음 생에 잘하겠다" 검증 불가능한 진술입니다.
현재 유서의 정확도: 21%
본 서비스의 발송 기준 정확도는 60%입니다.
현재 유서는 기준 미달로 발송이 불가합니다.
수정 후 재검증을 진행해 주세요.
수정 비용: 4,900원
잔고: 2,440원
잔고 부족으로 결제가 불가합니다.
유서를 제대로 쓸 돈도 없었다. 만 원짜리 죽음도 반쪽이었다. 재윤은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살아도 기준 미달, 죽어도 기준 미달이었다. 웃긴 건지 서러운 건지 자기도 몰랐다.
파일을 저장했다. '제목 없음'으로 두었다. 노트북 덮개를 닫자 화면의 불빛이 사라지며, 방 안에는 깜빡이는 형광등 빛만 남았다. 재윤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이 제 수명을 다한 듯 깜빡 깜빡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간격이 짧아지더니, 이내 어둠만 남았다.
어둠 속에서 재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