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엔비디아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4월 말까지 엔비디아를 들고 있다가 소액 익절한 나로서는 배가 아픈 나날이다.
사실 '엔비디아'라는 기업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알았다. 이전 회사가 IT전문 매체여서 귀동냥으로 들어 조금 알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나름 우스운 사건으로 엮었던 기억이 있다.
때는 2018년, 위에서 언급한 IT전문 매체에 재직할 때였다. 당시 금융부 기자였는데도 핀테크까지 담당한다는 이유로 중국 출장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윗 선배가 영어를 그다지 잘하지 못해 가고 싶지 않아 했다.) 바로 알리바바 주최 '윈치대회 2018' 현장에 가게 된 것이다!
윈치대회는 알리바바가 매년 주최하는 IT 콘퍼런스다. 지금이야 알리바바의 위세가 좀 꺾인 듯하지만 당시에는 알리페이의 흥행 등으로 한창 잘 나가는 기업이었고 그해 마침 창업자 마윈이 은퇴 선언을 한 시점이었다. 윈치대회 2018은 마윈이 회장으로서 하는 기조연설이 마지막일 것으로 전망된 만큼 사람들의 기대감도 높았다.
다만, 출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애로사항은 많았다. 다른 해외 출장 때는 한국 홍보 대행사가 중간에서 어레인지를 다 해줬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선 한국 홍보 대행사의 역할은 숙박+비행기 표 예약에 그쳤다. 결국 알리바바 본사 홍보팀과 직접 해외 통화를 하면서 출장 스케줄을 파악해야 했다. 짧은 영어라도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마 그때 중국 SNS 위챗을 처음으로 깔았던 듯하다.)
첫 중국 출장에 대한 두려움, 외국어에 대한 걱정 등을 안고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항저우 공항에 내리자마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무도 날 데리러 오지 않은 것이다. 본사 홍보팀과 연락하니 "공항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호텔로 오면 된다"는 답변만 받았다. 주차장에 갔다. 검은색 봉고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에 서있던 직원 분이 내 신원을 확인하고 나만 그 차에 실어 보냈다.
감히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 버렸다. '운전기사가 착한 사람이라면 내 짧은 중국어에도 대답해 줄 거야'라는 생각에 쓸데없이 기사님한테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해보니 기사님은 항저우에서만 계속 살아온 분으로, 자신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공사장을 가리키며 "곧 지하철 4호선이 들어서고 저곳에 거대한 센터 빌딩이 생길 거예요!"라고 신나서 말하는 그 모습에 내 기우도 어느 순간 녹아버렸다.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시를 욕먹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생겨서였다.
처음의 불안함이 무색하게 호텔에 아주 무사히 도착했다. 윈치대회를 하루 앞둔 그날은 꽤나 인상적인 하루였는데, 또 다른 항저우 시민과 잠깐이나마 친구가 됐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호텔 뷔페에서 밥을 먹다가 만난 사진기사. 그 역시도 항저우 사람이었는데 항저우에 사는 외국인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그가 보여준 사진들 속에서도 도시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중국 쉐라톤 호텔에서 먹은 베이징덕
해외에 나와있단 분위기에 심취한 탓일까. 사건은 다음 날 터졌다. 윈치대회 현장에 가기 위해 호텔 정문에 서있었다. 그때 "미디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게 언론용 차량이구나' 싶어서 냉큼 탑승했다.
차량 안의 모두가 똑같은 유니폼을 착용 중이어서 의아했다. '이번 행사에 공식 유니폼이 있었나?'하고 갸웃했지만 미리 안내받은 내용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냥 '굿즈'를 입은 걸로 이해했다.
희한하게도 한국 기자는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도 몇 명 온다고 들었는데 시간대가 다른 모양이었다. 다들 화기애애한 가운데 옆 자리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
"오, 너의 상사가 누구니?"
순간 우리 회사가 외국인도 알 정도로 글로벌했나, 하고 의아해하면서 사장의 이름을 댔다.
"음 그런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데. OOO은 모르니? 매우 유능한 친구야."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제야 우리 둘 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나는 기자고, ETnews라는 곳에서 왔어. 우리 회사를 알아?"
"아니, 너 여기 왜 타 있어?"
그 말에 자신들끼리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일제히 날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의 티셔츠에 선명히 박힌 글자. ENVIDIA.
그랬다. 난 엔비디아를 '미디아'로 잘못 들었고 아무 생각 없이 차에 탔다. 티셔츠에 엔비디아가 새겨진 점은 이상했지만, 행사의 대형 스폰서라 로고를 넣어준 것으로 생각했다. 내 옆의 엔비디아 직원은 날 엔비디아 한국 지사 직원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그들도 윈치대회에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스폰서이기에 프레스와는 입구가 달랐다. 물론 그들은 프레스 입구가 어딘지 몰랐다. 그중 한 명이 날 안타깝게 바라보며 행운을 빌었다.
그들을 보내고 멀뚱멀뚱 서있자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알리바바 본사 홍보팀이었다. 한국 기자 한 명이 낙오되었으니 그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어찌어찌 프레스 입구를 안내받고 한 30분 동안을 걸어서 간신히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것이 대륙의 클래스.)
당시에는 아찔했지만 지금은 실소만 나오는 추억이다. 엔비디아가 그때보다 더 성장한 걸 보면서 잠깐이나마 함께한 기억이 떠올라 흐뭇하다가도 아쉬움이 북받친다. 그때 엔비디아 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