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top 5 영화감독을 뽑으라면 내 마음속에 뜨겁게 자리하는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를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또, 이탈리아적인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누텔라, 페라리와 함께 쥬세페 토르나토레를 이야기하게 된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들 중 내가 사랑하는 영화는 단연 '시네마 천국'과 '말레나' 다. 두 영화는 각각 10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은 인생 최대의 성욕을 견뎌야 하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몰래 TV를 틀고 OCN혹은 채널 CGV를 보곤 했다. 처음 본 야동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지라 포르노 류의 영상자료는 무서웠다. 비교적 마일드? 한 야한 영화를 좋아했다. '말레나', '노랑머리', '푸른 산호초' 같은 영화가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영화가 야동보다도 더 스펙터클한 것이었다.
어느 날 새벽 말레나를 보게 되었다. 영화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도 가슴이 사무치게 좋았다. 푸르나였는지 파일구리였는지 말레나를 검색해서 다운받아 보았다. 다시 보아도 너무 좋았다. 그 싸구려 P2P 사이트에서 말레나를 업로드해둔 사람은 재야의 큐레이터였을까? 소개 페이지에 쥬세페 토르나토레에 대해 주절주절 써 놓았던걸 기억한다. '최고의 명작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라고 써져 있었던 듯하다. 덕분에 '시네마 천국'도 같이 다운 받았다.
'말레나'의 레나토(주인공)와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시대 배경도 다르고 공간 배경도 달랐지만 당시에도 지금에도 깊게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캐릭터들이다. 인생이 처음이라 헤매는 소년의 모습이랄까. 모든 것이 강렬하게 경험되는 시절을 잘 담아낸 영화들이다.
독일에서 살 때 어학원 방학이 시작되었다. '말레나'와 '시네마 천국'의 촬영 장소가 시칠리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에 품은 내 첫사랑 말레나와 토토의 고향을 찾아 시칠리아로 향한다.
팔레르모 공항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했다. 굉장히 이국적인 분위기다.
팔레르모 중앙역 근처 빈민촌에 숙소를 잡았다. 아무 계획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중해 사람들은 점심을 오후 3시쯤에 먹는다. 저녁을 밤 9시쯤부터 시작해 자정까지 먹는다. 나는 그걸 몰랐다. 오후 7시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아무도 없다. 주인도 조금 짜증 나는 느낌으로 나를 응대했다. 왜 이렇게 일찍 저녁을 먹냐며 뭐라 하더라.
아무도 없는 식당과 골목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요리...
앤쵸비 파스타. 되게 비리다.
할 일이 너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밤바다나 조금 더 산책을 하다가 숙소에 돌아갔다. 숙소에 돌아가는 길은 굉장히 스펙터클했다. 마약 장수들이 내 팔목을 붙잡고 "너가 원하는 거 다 가지고 있어 말만 해"라고 한다. 뭔가 여행 뽕에 맞아서 그런지 난 좀 대담해졌다. 그 마약 장수에게 "난 마약 안 해 맥주나 한 잔 할래?"라고 했다. 마약 장수는 자기 친구가 하는 이상한 펍에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정말 맥주를 한 잔 씩만 하고 나왔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친구가 되었다. 물론 그날 밤 이후로 그 친구를 본 적도 없다. 그것도 친구인가...?
정말 못생기고 늙은 창녀들의 호객행위가 난무한다. 심지어 트랜스젠더인 여성이 남자의 목소리로 하룻밤 자자고 청하기도 했다. 이조차도 재밌었다. 왜인지 내 인생이 밑바닥까지 치닫는 기분이 들었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날 마약도 하고 트랜스젠더와도 하룻밤을 지내보고 싶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에선 받아본 적 없는 환대다. 비록 그들은 돈을 뜯어내려 한 짓이지만,,, 하도 외롭고 차가운 독일에서 살았던지라 뜨거운 시칠리아 인들의 천박하고 더러운 환대에 내 맘이 붕 뜨고 말았다. 이곳에 말레나와 토토가 있다!!! 아름다운 곳이다.
다음 날 아침. 중앙역 근처에는 하루 단위로 운행하는 택시들을 섭외하러 갔다. 불법 개인택시다. 80유로만 주면 하루 온종일 가고 싶은 곳을 데리고 다녀 준다.
영화 '대부'에 주인공 가문 이름이 '꼴레오네'다. 시칠리아에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도시 '꼴레오네'가 있다. 꼴레오네까지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불법 택시를 타야 했다. 순하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랑 가격을 협상하고 꼴레오네 까지 함께 가기로 한다. 70유로까지 깎았다.
꼴레오네로 가기로 한 불법택시
가는 길
가는 길
운전하시는 할아버지의 사진 실력.
꼴레오네 시내 입구
'대부 2'로 기억한다. 알 파치노가 시골에 유배를 가있던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알 파치노가 먹던 술을 파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술을 한 병 샀다.
이름이 맘에 들어 들어간 식당
나는 모레띠맥주를 정말 좋아한다.
역시나 운전하는 할아버지의 사진 실력
역시나 운전하는 할아버지의 사진 실력. 동네 할아버지들이 사진찍자해서 찍었다.
할아버지가 굉장히 친절하기도 했고 자동차 안에서 담배도 피우게 해 줬어서 고마운 마음에 70유로가 아닌 80유로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졌는지 집에 가서 밥이나 한 끼 먹고 가라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할아버지 집 내부
할아버지의 아내 그리고 참치 리조또
운전은 잘하지만 남다른 똥손사진가 할아버지
오렌지를 깎아주셨다. 기가막힌 맛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수 만드신 와인도 주셨다. 맛은 없었다. 아내분이 할아버지보다 3살이 많다고 하신다. 이 할아버지와는 후에 남다른 인연을 갖게 된다. 향후 쓰게 될 시칠리아 두 번째 글에서 설명하겠다.
집에서 나와 다시 동네를 거닐었다.
숙소에 돌아와 오늘의 전리품 알파치노의 술을 한잔하고 잔다.
그 유명한 말레나가 광장 신을 찍은 시라쿠사로 향한다.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목욕탕이 있는 곳이자 변증법을 발명한 도시다.
당시에 길거리 뮤지션들의 cd를 좀 모아보려던 시기라 연주자들에게 말을 걸어보았었다. 연주가 정말 훌륭했다. 아쉽게도 이들은 유닛 밴드? 같은 것이어서 cd가 없다고 했다. 아쉬웠다. 하지만 기타리스트가 당일 저녁에 공연하는 곳의 주소를 남겨줬다.
이 여행을 하던 즈음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미슐랭 빕 구르망이나 스타 평가에 서비스 만족도가 빠져있었다는 것. 그 때문에 미슐랭 측에서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에 스파이를 보내 서비스 만족도를 측정한다는 것. 스파이는 흑인 가족이나 아시아인, 평상복의 유색인 등을 보내 인종차별은 없는지, 서비스가 편견 없이 평이 한지등을 평가한다는 것.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문을 좀 이용하기로 했다. 시라쿠사 시내 고급스러운 식당에 츄리닝차림으로 입장했다. 직원이 약간은 홀대하며 테라스 자리로 안내해줬다. 나는 미식가인 양 수첩과 팬을 꺼냈고 명함부터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직원이 홀에 들어가 사장에게 귓속말을 하는 게 보인다. 사장의 표정이 엄근진 해지더니 메뉴가 써져있던 칠판으로 된 입간판을 번쩍 들고 내게 왔다. 그러더니 메뉴를 하나하나 눌러 눌러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는 척했다. 애피타이저 프리모 세쿤도 디저트까지 다 챙겨 먹고 아주 잘~먹었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웰컴디쉬
다음날은 시라쿠사 근교에 있는 채석장과 원형극장에 갔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이날은 풀로 걸어 다녔는데... 더워 죽는 줄 알았다.
길을 잃고 보게된 이상한 교회. 유명하다고 한다.
울적하고 장난스럽던 시라쿠사 여행을 대충 마무리했다. 시라쿠사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전혜린이 쓰던 가스등이 뮌헨 슈바빙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듯 시라쿠사에는 기쁜 마음만 있을 뿐 말레나가 없었다. 독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서 팔레르모로 돌아갔다.
마지막 전날 마시모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한다길래, 더군다나 eu 대학 부속 어학원을 다니면 단돈 10유로에 공연을 볼 수 있다길래 바로 티켓을 사서 들어갔다. 정말 운치 있는 공연장이었다. 시칠리아 인들이 한껏 멋을 내고 자리에 앉는다. 난 여기서도 관광객 룩...
공연을 다 보고 뱉어지듯 공연장에서 나왔다. 이 뜨겁고 정렬적이며 노스탤직 한 도시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시칠리아에 여행 온 한국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찾아내 만나게 되었다. 꼴레오네에서 사 온 알 파치노의 술을 꺼내 들고 나왔다. 마시모 극장 앞에서 이름 모를 남자는 알 파치노의 술을 마시고 만취했다. 작전대로 되고 있다. 남자를 들쳐 메고 숙소에 꾸겨넣고 나왔다. 하얀 고양이를 닮은 예쁜 여자와 마시모 극장 앞에서 모레띠를 마셨다. 그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이벤트였다.
나는 시칠리아 마시모 극장에서 만난 고양이 같은 여자와 현재 사랑을 하고 있다. 나의 말레나, 나의 첫사랑 만나기 프로젝트는 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