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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비 Jun 21. 2023

한 고양이의 세계이자 전부가 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집으로 입양해 오는 아기 고양이라고 하면 엄마 고양이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배워오는 고양이들일 것이다. 적어도 내 주위 많은 고양이 집사들은 그랬다.


화장실 사용법, 스크래쳐 사용법, 밥 먹는 법, 사냥하는 법, 장난치고 노는 법(형제들과 엄마냥과 유대감을 잘 쌓으며 고양이 가정에서 잘 자란 고양이들은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안 아프게 살살 물며 장난칠 줄도 안다고 한다), 집사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 등등.




그러나 우리 돌콩이는 안타깝게도 어미로부터 일찌감치 외면당한 고양이라 이 모든 것들을 배워오지 못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가르쳐줘야 했다는 뜻이다. 모래가 잔뜩 담긴 화장실 쓰는 법을 몰라서 패드에 볼 일을 봤고, 부랴부랴 사온 스크래쳐는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의 고양이 집사들은 "고양이들은 강아지들에 비해 독립적이며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동물이라 그다지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라고 헸지만 아마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돌콩이는 도움을 정말, 정말, 정~~말 많이 필요로 하는 고양이였다는 것을.


세상에 갓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와 아무것도 모르는 집사들이라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환장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때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서툴게 몸을 던진,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큰 사랑을 만나는 것. 우리에게 돌콩이는 그런 세계를 열어준 고양이였다.




이왕 우리 집에 들어왔으니 대학교 장학생까지 시켜보자며(=스무 살이 넘도록 오래오래 살게 해 주자) 우리 가족들은 의지를 다졌다. 동물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동물을 한 번씩 다 키워본 엄마와 그걸 고대로 닮은 나, 우리가 하는 일은 무턱대고 동조하며 응원하는 아빠, 동생은 돌콩이가 온 날부터 더 돈독해졌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돌콩이가 온 그날부터 열심히 고양이 카페를 훑었다. 실제로,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이거 괜찮은 건가요?(ex 아기고양이 눈곱 색깔 이거 정상인가요?) 하는 글들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그뿐일까? 누구보다도 돌콩이를 가장 열심히 보살폈던 엄마는 "애기가 밥을 평소보다 좀 남긴 거 같다", "오늘 아침 똥이 조금 무르다"와 같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이동장에 태워 병원에 드나들었다.


사실 뭐 지금에야 “고양이를 부탁해” 라든가, 고양이 전문 수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 고양이 반려가족들을 위한 콘텐츠가 차고 넘치지만  8년 전만 해도 거의 없다시피 할 때였다. 그러니 더 막막했을 수밖에.




아기고양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는 일은 신생아를 키우는 일과 아주 비슷했다. 텀을 두고 자주 수유를 해줘야 하고, 배가 고파 칭얼거리며 울면 달래줘야 한다. 아기 고양이의 몸의 온도 조절을 잘해줘야 하고, 항문과 얼굴을 깨끗하게 잘 닦아줘야 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귀나 눈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주어야 했다.


다만 신생아와 구분되는 것은 고양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강아지와 다르게 화장실을 아주 잘 가려서 아무 데나 응가나 쉬야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고양이라는 동물은 굉장히 영특한 것 같다며 설레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게 하나 있었으니... 사실은  이돌콩은 화장실 사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배변 패드에 볼일을 보던 고양이였다는 것. 아이고야.



자연에서의 고양이는 상대의 행동을 모방하며 생존 능력을 키워나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걸 이용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라고 있는 돌콩이를 위해 고양이 기본 소양에 대해서 무엇이든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물론 내가 고양이 화장실에 볼일을 봤다는 건 아니고.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조그맣던 이돌콩.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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