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과 해방
하늘도 들도 모두 공백으로 남았다. 때마침 하루 중 최저기온이 영하권에 들어가면서 공백으로 남겨진 배경 모두 얼어붙은 체 다음 봄까지 쉬어 갈 것이다. 덕분에 자연의 시간에 순응하여 나의 육체적 노동도 해방되었다. 노동에서는 빗겨 설 수 있었지만 내업은 더 많이 쌓여 있었고 시간은 내 편 보다 주로 남의 편에 서있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숨 막힌 일정들 모두 소화되었고 이겨낸 시간 모두 나의 삶이 되어주긴 했다. 계산은 따로 하지 않았지만 아직 실익보다는 가치나 명분에 주목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나에게는 버텨낼 재간이 있어 보였다.
상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 와서 새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순진무구한 선비인 적도 없었으나 가깝다면 선비 근처에서 서성이고 싶었고 천성은 저잣거리 천둥벌거숭이라서 천상 김삿갓처럼 세월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해야 했다. 다만 타고난 팔자가 내게 그런 것을 유산으로 물려준 적이 없어서 생긴 대로 닥친 대로 살다 보니 오늘 하루에 당도했다.
지난 어제는 여느 하루처럼 사우나에서 시작해서 아침 일찍부터 밀린 건창고 선반 제작과 외부 창고 리모델링을 위해 시공사 사장님을 만나면서부터 시작했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밀려온 산림관리사 제작에 대해 일정논의를 시작했다. 12월 첫째 주까지 모두 완공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고 나서 인허가 등 행정과 관련된 일정을 챙겼다.
문득, 산림관리사인데 임야가 아닌 농지에 설치할 수 있을까, 지금 의심해서는 안 될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동일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산림조합에서 제공하고 있었지만 불가능하다는 취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낭패였다. 그래, 쉬운 일이 없었고, 왜 지금에서야 이걸 챙겼을까 싶었지만 지난겨울 담당 공무원의 현장 실사에서 지적이 없었다는 점을 볼 때, 관련 사업 사업시행지침서를 살펴봤다.
다행히 산림사업 관리 최소 시설로 농지법 시행규칙 제24조에 의해 농지에서도 산림관리사를 농지법의 농막으로서 설치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내 허술한 막연한 기대를 근간으로 감당해 온 일 처리에 대해 새삼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아마 나름 담당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검토된 바 있었을 텐데 오래전 일이라 같은 과정을 재차 반복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핑곗거리를 찾았다.
얼른 관련 서류 일체를 꾸려 읍사무소 건축 담당 주무관님을 찾아뵙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처리를 부탁하고, 점심은 근처 산림조합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창 과장님과 해결했고, 오후에는 홈페이지 제작 및 햇살칩 상세페이지, 물엉겅퀴 패키징 디자인을 맡긴 회사를 찾아가서 주고받아야 할 필수 서류와 대금 지급 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8잔 투고백을 담아 갔고, 스타벅스 투고백을 처음 본 직원들은 신기했다. 기관 생활을 한 경험이 그럴 때 도움이 되었다. 미팅 분위기가 한결 편했었다.
청송 주거처로 돌아와 보니 예고된 영하권 날씨에 대비해 지난 계절 내내 수고했던 농기계에 부동액을 채워야 했고, 종일 팥을 털었던 부모님이 감기 기운에 힘에 부쳐해서 읍내로 가서 부동액과 판콜에이를 구매해 돌아왔다. 그리고 날은 이미 저물었고, 생강청 납품을 위해 생산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회사 식구들 저녁을 챙겨야 했다. 저녁은 읍내 중국집으로 가서 소맥 폭탄주로 반주해 가며 아웅다웅 실랑이와 남은 한 해 업무 일정을 남의 일처럼 주절거렸다.
그리고 돌아와 간단한 세면을 하고 홀린 듯이 침구로 파고들어 전등 스위치를 내리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목이 타서 깬 아닌 밤중이 새벽 1시였고, 그때부터 잠에서 깬 체로 포털 뉴스, 페이스북, 유튜브를 전전하면서 깨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지금은 무언가를 써볼 여력이 되겠다 싶어 노트북 앞에 앉은 게 새벽 4시였고, 지금 마무리를 하는 시각은 5시 14분이었다.
이제 6시면 사우나 문이 열린다. 나는 사우나로 갈 것이다. 그리고 여느 하루처럼 하루에 하루씩 살아 볼 것이다.
'어떻게 살 것 인가."
이제 내년 2월이면 만 3년을 채우게 된다. 3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옛말에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 시간이고, 그 3년을 3번 반복하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 된다.
나는 지금 풍월을 읊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어리광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어서, 뜻한 바를 위해 꺼내 들었던 칼을 생각하면 무라도 썰어야 했다. 길을 내어 가다가 멈춰 서서 돌아보고 좌표를 수정해 가면서 달려올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레일 위의 설국열차처럼 멈추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좌충우돌 우당탕 해가며 하루를 하루씩 살았다.
언젠가는 이 한 해 내에서도 지난 3년을 결산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확실한 한 가지는 1차 원재료 생산 노동을 줄이기는 해야 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생각해야 했고, 이제는 싫은 걸 기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때가 찾아온 계절처럼 공백과 해방이 내어준 공간에서 나는 살 길을 궁리해야 한다.
하루에 하루씩.
2025년 나에게는 서당개도 윗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