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우성
미처 겨울 채비를 하지 못하다가, 어제는 첫눈을 난데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지내다 눈 예고를 미리 살피지 못했고, 그렇게 소주 한 잔 하고 돌아 나서는 길, 마흔두 살 아저씨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첫눈을 너랑?' 하며, '에이씨~' 하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이도 나도 새삼 첫눈의 설렘을 가지고 펄쩍펄쩍 뛸 나이는 아니어도 그냥 첫눈이 올 때는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며 설레고 싶었나 보다.
더욱이 어제 술자리는 오랜 친구 둘이 앉아 두런두런 중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한 참 나누었다. 늘 마음은 펄럭이는 청춘 같은데, 우리는 마흔둘을 살고 있었고, 그 중고등학교의 이야기라는 것도 25년도 더 된 일이었다.
트럭커를 하는 친구는 아직 미혼이고, 본인의 가족사 이야기 해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누구나 그늘 진 구석이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그늘에 대해 이제는 담담하게 남의 일처럼 말할 수 있는 때를 살아가고 있었다.
벌써 사는 게 지겨울 나이는 아니었지만 서로 지쳐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다가도 그 친구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냥 조용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모르게 '그러게...'를 말할 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선 술잔을 기울 일 때, 이런 일상이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서로 버거울 때가 많이 있구나 멀찍이 무언가 가늠되는 바가 있었다.
나는 그의 홀가분한 처지가 근사해 보였고, 그이는 나의 작고 남루한 성취가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서로 진짜 속은 모르지만 모두 결핍과 그늘에 치여 소리 없는 아우성을 소주 한잔 한잔에 녹여내고 있었다.
그리고 첫눈을 함께 맞았다. 취기 오른 마흔 살 아저씨들의 걸음걸이가 여운을 남길만 했고, 그이는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런 그이를 2025년의 첫눈과 함께 마음에 담았다.
하루에 하루씩.
소주 한 잔에 녹여낸 그늘과 결핍, 첫눈이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