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린 Aug 15. 2019

앙버터

그 가증스럽고 매혹적인 이름


오늘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앙버터를 2조각 먹은 것이다.






신혼집과 내가 원래 살던 본가는 자동차로 10분 거리이다. 그래서 종종 본가 동네에 있는 엄청나게 맛있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곤 한다. 그 집의 빵은 동네 빵집 치고는 퀄리티가 매우 훌륭해서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빵집이다. 지난 일요일, 나는 케이크를 사러 그 빵집에 갔고, '왜 이렇게 맛있는 빵집이 동네 빵집인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빵집의 최고 인기 메뉴인 맘모스빵과 내가 좋아하는 앙버터, 치아바타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월요일. 문득 '이제 살을 본격적으로 빼야 할 계절이 오는데,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해보자. 어차피 거의 밥을 혼자 먹으니 누가 강요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방탄 커피를 마시며 고기와 약간의 야채를 섭취했다. 그런데 아차, 냉장고에는 일요일에 사둔 앙버터가 눈에 띄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을 절제하는 다이어트이니, 앙버터를 먹으면 안 될 텐데...?...라고 생각은 했으나, 난 앙버터를 무척 좋아하고, 이미 사둔 앙버터를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고심 끝에 혼자 규칙을 정했다. 앙버터는 하루에 딱 한 조각만 먹을 것. 한 조각 정도는 괜찮겠지.


 이 결심은 월요일에 잘 지켜졌고, 화요일에도 잘 지켜졌다. 그리고 오늘, 수요일. 









오늘의 내 아침 식사다.  앙버터와 방탄 커피, 요거트를 먹었다. 그래. 아침에 분명 앙버터를 한 조각 먹었다.


11시 30분쯤에 이렇게 아침 식사를 먹고, 2시 30분쯤에 샐러드와 소고기, 오리고기를 조금 구워서 점심 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3시 30분쯤.




밥 먹은지 1시간 밖에 안되었는데 나는 앙버터 한 조각을 더 먹고 말았다.




뭔가 입이 심심했다. 그래서 정말 무심코 냉장고에서 앙버터를 꺼내어 한 조각 떼어먹었다. 그리고 먹고 나서 후회했다. '하루에 한 조각씩만 먹기로 했는데.'




작심삼일의 삼 일째에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깨트리고 말았다. 앙버터가 무엇인가. 감자튀김과 비견할 수 있는 내 인생의 길티 플레져 아닌가. 나는 앙버터를 처음 접하기 전까지는 감히 버터 조각을 통째로 입안에 넣어본 적이 없다. 버터=지방=살이니까! 버터 한 조각을 그대로 먹는다니! 살이 엄청나게 찌면 어쩌려고! 버터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버터 한 조각을 통째로 먹는 행위는 지금까지 내게 감히 허락되지 않은 행위였다. 하지만 앙버터가 유행하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빵 사이에 팥과 버터 조각을 깨물어 먹는 걸 본 순간,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린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체 버터를 먹어도 돼! 이것 봐, 이 빵은 원래 그렇게 먹는 거라고! 뭔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에 해답이 등장한 느낌이었다. 고체 버터는 살이 찌니까 통째로 먹어선 안 되지만 앙버터는 먹어도 된단다! 왜냐면 원래 그렇게 먹는 빵이거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앙버터에 껴있는 그 고체 버터의 비주얼은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나는 앙버터 섭취량을 하루에 한 조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2조각이나 먹고 만 것이다. 무척 후회 중이다. 왜 2조각이나 먹었을까. 분명 아침에 먹었는데. 이게 다 앙버터가, 버터 조각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야. 




 조금은 내 의지를 탓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사람의 의지라는 건 상황에 따라 무척 강해지기도 하고 무척 약해지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의지의 힘이 달라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샤워를 하자'에 대해서는 의지가 80 정도로 강해서 20의 '샤워하기 귀찮다'를 이기고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는데, '앙버터를 하루에 한 조각만 먹자'의 경우에는 앙버터가 내 의지보다 좀 더 강하기 때문에 내가 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때 내 의지는 40쯤 되고 앙버터는 60쯤 될지도.




이렇게 생각하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60이나 되는 앙버터를 상대로 40의 힘으로 이틀이나 버틴 거잖아? 그럼 하루쯤은 져도 되지 않을까? 살은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라도 좀 더 주의하면 될 거야. 앞으로 내가 앙버터를 하루에 1조각씩만 먹기 위해서는, 내 의지를 60으로 끌어올려서 앙버터를 이기려고 노력해야겠지. 난 건강염려증이니 버터 과다 섭취로 인한 발병 사례 같은 글을 읽으면 의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2조각밖에 남지 않은 앙버터를 내가 내일과 내일모레 딱 한 조각씩만 먹을 수 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