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라디오
오프닝
외국인이 길을 물어봤습니다. 뭐를 묻는지는 알았지만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단어는 떠올랐지만 조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영어로 유창하게 말씀해 주시고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외국인도 자리를 떠나고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이 나이 먹어서 뭐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외국인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을 뿐인데 인생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잘한 게 있을 텐데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오래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음악
-윤하 (사건의 지평선)
윤하(YOUNHA) - 사건의 지평선 [가사/Lyrics] - YouTube
사연
일흔이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유창한 영어를 하는 모습에 반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당황한 저를 구해주신 왕자님 같은 모습이었거든요. 외국인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과 제가 영어를 못하는 것과 비슷한 처지인데 외국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제자신이 너무도 못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외웠던 단어조차 쓰지 않으니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제가 외국인의 질문에 얼마나 당황을 했던지 외국인과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심장이 한참 내댔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신 할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깔끔한 옷차림과 자신감 있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을 듯합니다. 또 저도 이 할아버지처럼 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잘난 척이 아니라, 당황한 누군가를 기분 나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여운은 길게 남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있을 예정입니다. 제가 많이 소심하거든요.
나이를 먹으면서 꼰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겁니다. 다만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꼰대가 되어버립니다. “나는 꼰대는 아니야.”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꼰대의 정석을 보여주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도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이런 순간에는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꼰대를 피해 가는 거구나!’라고.
오늘 길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신 할아버지는 정면교사로 삼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멋있어 보였거든요.
스타벅스에서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필요에 의한 것보다는
허영에 가까운 마음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성과 다짐을 동시에 한 날이라 올해의 마지막날까지는 기억이 날 것입니다.
음악
-헌트릭스 (골든)
HUNTR/X (헌트릭스) - Golden(골든) [가사 | Lyrics] - YouTube
클로징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락가락했지만 오늘도 잘 견뎠습니다.
오늘 수고 많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행복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