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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y 07. 2022

우리는 소수(素數)로 지음 받았다

수학을 다시 공부하다

세상은  모두 숫자로 표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AI시대라고 하는 지금은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고 숫자로 말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숫자로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지는 지금은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는 모든 정보들 표현하기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입으로 하는 언어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숫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 숫자를 표현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우리가 수학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숫자의 체계입니다. 처음에는 하나, 둘, 셋.... 등의 수를 구별하는 것을 배우지만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서 '영(0)'의 개념을 배우고 차츰 정수, 유리수, 무리수 등으로 개념이 확대됩니다.





[ 소수 @상위 5%로 가는 수학교실 @naver ]

아마도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 중에 '소수'라는 개념입니다. 소수는 많은 숫자 중에 특별히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모든 숫자는 약수가 있는데 약수를 오직 자신 본인과 1만 가지고 있는 것을 소수라고 부릅니다. 사전적정의로는 1과 그 수 자신 이외의 자연수로 나눌 수 없는 자연수라고 합니다. 소수는 우리가 특히 알고 있는 '2, 3, 5, 7, 11....'로 시작되는 숫자를 말합니다.


'소수'라는 개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개념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숫자는 또 다른 숫자로 나누어 집니다. 수학에서 약수의 개념은 어떤 숫자를 나눌때 나누어지는 숫자를 약수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숫자는 약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숫자는 엄청나게 많이 나누어집니다. 주로 짝수가 그렇습니다. 보통 '2'로 나누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2의 배수로 나누어지기도 하지요. 다른 숫자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그 숫자는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숫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수(素數)로 창조하셨습니다. 소수는 1과 자신 외에는 어떤 숫자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즉, 1과 그 자신의 외에는 다른 숫자로는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수는 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가집니다. 어떤 숫자로 나누어도 다른 숫자로 쪼개지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다른 것으로 대체 대거나 대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소수의 가족은 1과 자신 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1은 무엇을 뜻할까요?


'1'은 오직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모든 소수의 약수는 '1'입니다. 소수뿐만 아니라 모든 숫자의 약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 외에 자신이 약수라는 것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서는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나'라는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일대일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무엇이 끼어들어서 나 자신을 대신하기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수가 1과 자신 외의 숫자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오직 하나님과 나 이외에는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또는 남편이, 아내가 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내가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직접 대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도 많은 인물들을 하나님은 직접 부르셔서 만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동산의 동물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하신 것도, 아브라함을 고향과 친척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일대일로 만나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과 동행하시면서 일대일로 만나주시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울도 다메섹에서 빛으로 나타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보았지만 오직 그 빛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사울 혼자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대일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관계, 일대일의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가끔 자녀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의 신앙이,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중보기도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나 자신보다는 본인들이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남편이나 아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우리는 기도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일대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의 비밀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과 자신, 하나님과 자신만으로 대변하는 소수는 우리가 어쩌면 무심코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조용히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그 예배 속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날지라도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대하는 많은 숫자들 중에 소수를 볼 때 그 소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합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2', '3', '5', '7'도 있지만 두 자리 숫자로 넘어가면 11, 13, 17, 19, 23,29,31,37로 갈수록 소수가 줄어듦을 알 수 있습니다. 1에서 멀어질수록 소수는 점차 줄어듭니다.


우리가 어떠하듯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일대일로 부르셨고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일대일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기도 합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을 혼자,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가끔씩 세계의 부호들과의 점심식사를 하는 것을 경매에 붙이기도 하는데 그 가격은 수억 원을 넘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가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일대일로 독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도 아무 때나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고 그 관계가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 소수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고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 속에는 다른 그 무엇도 끼어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온전히 마주하는 삶, 약수를 오직 하나님만 가지는 삶,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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