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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고운 May 19. 2023

내 다정한 여자친구들에게

미셸 렌트 허슈, 『젊고 아픈 여자들』








내 다정한 여자친구들에게 추천합니다.



“음, 약물 치료는 어렵겠네. 수술합시다.”



작년 삼월, 허리께 작은 종양이 생겼다. 의사는 절개해서 빼내는 걸 추천했고 작은 수술이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외과전문의가 말하는 작은 수술과 내가 생각하는 작은 수술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다래끼 수술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수술 당일 수술복으로 환복하고 채혈과 심전도 검사, 엑스레이까지 찍고 있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꼈다. 수술실 간호사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누워있는 내 다리를 묶었고 산소포화도 체크기까지 달고 있으니 너무 긴장해서 아드레날린이 귀까지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마취는 했지만 살을 가르는 느낌 때문에 횡경막을 닫고 숨을 참았다. 그날 나는 허리가 열린 채로 내 몸에서 빼낸 아몬드만한 종양을 강제로 확인해야만 했다.



흉터가 남았다.  켈로이드인 줄 몰랐던 피부는 수술 자국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많이 속상했다. 부모님은 수술 자국을 보며 타투를 해도 괜찮다고 먼저 말씀해 주셨다. 옷을 입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겨우 새끼손가락만한 이 흉터가 신경 쓰이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에 일이었다.



‘잠재적인 나의 파트너가 흉터를 보고 매력이 떨어질까 봐.’



미셸 렌트 허슈 『젊고 아픈 여자들』은 건강 문제를 겪는 젊은 여성들은 일, 우정, 연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가진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파트너 상대가 남성인 경우 깊고 강고한 문화적 요인, 미의 기준, 성 역할 따위가 연애 관계에 작용하며 관계에서 ‘여자’가 될 것을 기대받는다. 여성들이 상대방의 질병이나 장애를 모두 포용했다는 건 아니지만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훨씬 너그럽고 열려 있다 말한다. (애인 관계에서 여성이 아플 때가, 남성이 아플 때보다 결별률이 7배는 높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름다움을 강요 받고 질병을 숨겨야하는 젊고 아픈 내 여자친구들이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니 고립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마티 앳(at) 시리즈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에 이어 무척 좋은 책을 만나 기쁘다. 다음 앳 시리즈 역시 기대된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에는 너무 젊다는 말을 듣는 일. 여러 건강 문제가 이십 대의 나를 찾아왔고 아주 바싹 파고들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넘쳐 나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다."

- 젊고 아픈 여자들 180 p.



"선의를 가진 미의 여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와 성차별주의가 짙게 밴 시스템의 일부가 됨으로써 수백만 시청자의 신체적 불안정을 영속화하는 데 분명 기여한다. 아픈 젊은이는 병과 싸우며 헤쳐가야 하고, 행복한 얼굴을 해야 하며, 문화적 기준에 따라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또한 어떻게 보면 '감동 포르노'라고 부를 만한 것의 예가 된다. 이 용어는 장애가 있는 사람에 관한 희망을 주는 평면적인 이야기-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족을 느끼기 위해 이용하는 이야기-를 일컫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몸과 몸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편향된 기대를 강화할 따름이다."

- 젊고 아픈 여자들 32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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