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지난주 코로나에 재감염 되었다. 격리된 방에서 낮 동안 내내 틀어 놓은 에어컨을 끄고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어젖혔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선선한 밤바람으로 커튼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여름이 가고 있구나. 창문 너머에서 계절이 가을로 흐르고 있었다. 가을바람을 이불삼아 덮고 잠들다가 다시 깨길 반복했을 땐 다음 날 출근하지 않으니 잠을 청하는 수고로 애쓰지 않았다. 대신 새벽하늘이 푸르게 감았다 뜨는 광경을 보며 “토성적 기질”에 대해 생각했다. 공전 주기가 가장 긴 행성, 토성의 영향에 관해서.
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원제: Under the sign of Saturn)에서는 자신의 우울을 “토성적 기질”이라고 설명한 발터 벤야민을 소개한다. 토성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무감각하고 우유부단하며 둔감하다. 너무 많은 가능성을 파악하거나, 현실적 감각 부족을 알아차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른다. 자기가 바라는 조건으로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에서 나오는 고집이 있으며 실제보다 더 느리고 서투르며,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형편없는 방향감각과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능력, 그래서 여행을 더 사랑하고 헤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가차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데서 무얼 발견한다. 사소한 것에 그들은 의미를 끌어낼 수 있고, 사람에 대해선 신의가 없지만 사물에 대해선 신의가 있어 열광적으로 사물을 수집한다. 또 결정적인 일격은 항상 왼손으로 날린 주먹이라 생각한다.
손택이 설명하는 벤야민, 흔히들 말하는 우울한 기질이 있는 사람을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꽤나 근사한 설명을 붙이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분이라 책을 읽으며 위로가 됐다. (게다가 실제로 내 사주는 토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은 날, 우울을 두르고 산책조차 하기 힘들어 멍하니 침대에 누워 방 천장만 보고 있는 날엔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에서부터 Japanese Breakfast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까지 이어지는 믹스테잎을 들으며 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을 읽어보자.
몸 안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조심스레 당신에게 안부를 물을 것이다. 여기, 토성의 영향 아래서.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Cro3-mqddZFDb-hPju6QUsyDg6sbYwdw
링크를 클릭하면 믹스테잎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