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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드름웨어하우스 Jun 21. 2020

딸아이와 엔지니어

2017년도에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960년대 NASA에서 근무하는 흑인 여성 엔지니어들의 에피소드를 묶은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 인종차별이 노골적이었던 60여년전 이야기라 낯설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5569


시작하면서 히든 피겨스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글의 아이디어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2017년도 애플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해마다 점심 시간에 애플에서 초대 손님을 불러서 쉽게 듣기 힘든 경험을 소개하는 런치 세션이 있다. 

2017년 초대 손님 중에 한 명이 바로 히든 피겨스 인물들과 연결된 Christine Darden 박사였다. 영화처럼 1967년 Human Computer로 지내면서 흑인 여성으로 차별에 맞서오다가, 1983년에는 NASA 지원으로 에어로졸 물리학 분야에서 학위를 받고, 초음속 비행을 연구했다. 여전히 초음속 비행시  발행하는 수퍼 소닉을 줄이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사진에 보이는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https://www.nasa.gov/image-feature/christine-darden-from-human-computer-to-engineer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자. 박사의 발표가 끝나고 객석에 있던 몇 명이 질문을 했다. 그 중에서 어떤 중년 엔지니어가 했던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자기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박사님처럼 여성 엔지니어로 성장하도록 키우고 싶다. 집에서는 남자 아이가 할 놀이와 여자 아이가 할 놀이를 구분해놓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얘기하는 것 같다.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박사의 답변은 그냥 '자기도 정답은 모르겠다'였다. 



휴일 아침에 딸아이와 소풍 간 것처럼 꾸미고 소꼽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질문했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나도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소프트웨어개발 교육을 하다보니 누구든지 엔지니어를 직업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하면 추천하는 편이다. 특히 딸아이가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면 적극 밀어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아이와 놀다보면 내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으로 자꾸만 여자 아이니까, 남자 아이니까 이렇게 놀아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 말과 행동을 재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주디 해리스의 '양육가설'을 떠올렸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할까. 유전적으로 물려준 것이 전부가 아니듯이, 부모가 가르치는 것 또한 전부가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속한 환경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또래 혹은 친구들과 어떤 환경에 반복해서 노출이 되는지, 어떤 것에 영향을 받는 환경인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쁜 환경보다는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환경에 노출되도록 이사라도 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모어 페퍼트는 '마인드스톰' 책에서 어린 시절 톱니바퀴에 빠져서, 톱니바퀴를 기반으로 수학적인 사고를 배웠다고 고백했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놀이가 학습의 도구가 되고, 어린이 시절을 거쳐서 청소년 시절에도 톱니바퀴처럼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래서 문득문득 일상 속에서 딸아이와 어떤 놀이를 하다가 수학을 싫어하지 않게 수학 밈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박사에게 질문했던 어느 엔지니어처럼 딸아이에게 핑크색 옷이나 인형놀이, 소꼽놀이, 색칠공부 이런 걸 강요하지 않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그 반대로 아들에게 파란색이나 스포츠, 전쟁놀이, 레고, RC카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도록 해주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매력은 어느 분야든지 연결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계속해서 개선한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삶이 딱딱하기 보다는 유연하고, 멈춰있기 보다는 발전하고, 반복하기 보다는 개선하기를 희망한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삶이 나보다 유연하길 희망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고,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알아가며 성장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부모로써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까 고민은 끝이 없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이런 고민을 풀어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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