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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드름웨어하우스 Jun 19. 2020

시인을 꿈꾸는 디지털 엔지니어

아주 어릴 때 철없던 시절에 장래 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과학자'라고 당당하게 적었던 때가 있었다. 

옆자리 짝꿍이 대통령이라고 쓰면 와~ 하고 우르르 달려가던 때였다. 


이제 장래 희망을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는 일보다는

내가 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물어봐야 하는 어른이 됐다. 


그 작은 꿈은 언제쯤에 현실로 나와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흩어졌을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더 많은 친구들과 어른들을 보면서 머리가 제법 컸던 때였을 거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은 정확하게 떠오른다. 


5월쯤에 나보다 6살이 많았던 H 교생 선생님을 만나고서 내 일기장에는 온갖 낭만적인 단어들이 가득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유행가 가사가 마치 현실에도 있을 것만 같았다.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퓨전 재즈 밴드의 제목과 비슷했고, 선생님의 이름은 공일오비 H에게 노래 속에 주인공 같았다. 그리고 그분은 국어 교생 선생님이었다. 


첫사랑. 

그렇게 부르고 싶었지만 그게 첫사랑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선생님과 친해지고, 집 앞에 찾아가고, 몇 시간씩 대화하면서 교복을 입고 커피숍에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철없는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런 풋풋한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에 일기장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낡은 일기장은 사라졌지만, 그때 적어놓은 어설픈 단어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지 않고 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시인을 꿈꾸던 17살 소년은 이과를 선택하고 엔지니어가 되기를 소망했다. 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가 돼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기록할 것이다. 


만나서 반갑다.

시인을 꿈꾸던 디지털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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