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예쁜 사과예요

선택받지 못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

by 가희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어느 때에, 큰 맘먹고 잠시 모든 걸 관두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시골집에 갔다.

문경의 시가지에서 간판가게를 하던 부모님이 노후를 앞두고 소소하게 사과 농사를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었을 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몇 년 하고서 스물넷의 나이에 결혼해 아빠와 함께 간판 일을 하던 엄마는 사과대학에 입학해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할 일 없이 뒹굴대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서 과수원으로 나섰다. 농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사과부심' 있는 엄마의 농작물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일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쫑알쫑알 말동무를 해주었다. 엄마는 사과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을 뽐내면서 일명 '적과'라는 작업을 했다. 쉽게 말해선 사과를 솎아내는 작업이었다.

고작 손가락의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사과를 마구잡이로 떼어내던 엄마는 그렇게 설명했다. 가지 한 줄기에서 열매가 두 개 열리면 하나의 열매라도 잘 길러내기 위해 비교적 빈약해 보이는 열매는 잘라내줘야 한다는 거다.

이 외에도 수확철인 가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사과를 따고 또 버려야 한다는데, 이건 한 가지에서 너무 많은 열매가 달렸기 때문에, 이건 너무 끝쪽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건 너무 색이 파랗기 때문에. 사과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그렇게 경쟁에서 살아남고 또 살아남은 사과만이 비로소 상자 안에 들어가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거다.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늘,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 경쟁해야만 한다.

능력과 입소문에 따라서 일이 계속 이어지느냐 끊기느냐가 판단되는 방송 바닥에서는 특히 그랬다. 같이 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동료 작가에 비해 능력 있는 작가로 비춰지기 위해 늘 노력해야 했고,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는 늘 나오기 때문에 동시간대의 수많은 프로그램들과 늘 경쟁해야 한다. 심지어 회식을 할 때면 어떤 팀의 작가들이 제일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잘 노는지까지 경쟁을 붙이기도 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명확했다.


그 어떤 이의 어떤 기준에 따라 나의 능력치는 평가됐고 또 살아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늘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농작물도 강한 그것만이 살아남는다는 거다. 엄마가 솎아내어 바닥에 버리는 사과들을 주섬주섬 주웠다. 사과가 되지 못한 사과도 참 안타깝고 예뻐 보여서 주머니에 넣어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며칠 후 TV를 보는데, 수확 전에 따낸 작은 사과들을 갈아먹으면 해독작용이 뛰어나다는 정보가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늘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과가 되어야 하는 걸까. 무조건 이기기 위해 성숙을 향해서만 나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가 태어났을 때, 그 어떤 부모도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하진 않았을 텐데. "너는 이기는 사람이 되렴" 이 아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말을 듣고 자랐을 텐데.

그러니 우리 모두 애쓰지 말고, 아프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수확철인 가을까지 빛 좋고 맛 좋게 자라나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사과가 되면 더 좋겠지만, 그전에 떼어져 버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작은 사과면 어떠랴. 그대로 예쁘기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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