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일들은 전혀 모른 채
"나도 몰랐다. 올봄, 이 짧은 시간에 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비가 오던 그날 밤, 학교에서 배워온 수많은 것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이곳에 온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끝일지 내일이 끝일지 몰라 날 초라하게 만드는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매일 밤 생각했다.
오늘만 해보고 아니면 접자.
내일만 해보고 아니면 도망가자.
그렇게 현재의 발끝만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동안 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KBS 드라마 <프로듀사> 승찬의 독백 중.
나 취직했어!
라는 전화에, 엄마가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교 근처였던 자취방을 여의도 가까운 동네로 옮기고 엄마는 예쁜 코트 한 벌을 사주었다. 다시 문경으로 내려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앞으로 정말 잘 해낼게'라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었다.
첫 출근 하던 날 방송국 앞에서 꿈에 그리던 공유를 봤고, 어깨가 우쭐해져서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해댔다. 출입증을 찍고 방송국을 들어갈 때마다 정말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러한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엄청난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제작하던 다큐멘터리는 메인작가 2명에 막내작가는 나 혼자였는데, 내 주된 업무는 촬영본을 보고 그대로 받아 적는 '프리뷰'였다. 메인작가님들은 그 프리뷰 노트와 함께 촬영본을 보시곤 했고, 작가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그 프리뷰를 끝내 놓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안 먹고 안 자고 몇 날 며칠을 프리뷰만 하다가 삼일 만에 방송국의 매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는데, 그게 체해서 다 게워낸 후로는 몇 년 동안 김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엄마가 취직 기념으로 사주었던 예쁜 코트는 당연히 몇 번 입어볼 기회도 없었다.
이후 옮겨간 프로그램에는 선배 언니들이 많았다. 언니들은 나를 잘 챙겨주는 듯했지만, 나는 내내 묘한 불편함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 프로그램의 첫 출근 날, 처음 보는 나에게 한 언니가 "너도 며칠 있다 도망가는 거 아니지?"하고 비웃듯 말했었고, 나는 그게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회사에서는 식대를 지원해주지 않았는데, 점심과 저녁 두 끼를 사 먹어야 했다. 작가 언니들과 다 같이 밥을 먹은 후, 언니들은 각자의 몫을 계산했고 나도 당연히 그랬는데, 계산을 마치고 하나둘 식당을 나가는 언니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언니들과 함께는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까지 마셔야 했다. 물론 각자의 돈으로.
당시 월급은 80만 원이었는데, 자취방의 월세로 나가는 돈이 45만 원, 그리고 나머지 돈은 거의 택시비로 썼다. 한 번도 버스가 다니는 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시체처럼 회사와 집을 오가던 중, 출근하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에 도착한 지하철이 지옥으로 가는 열차처럼 느껴지는 거다. 정말이지 갑자기였다. 그전까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서 지하철 몇 대를 그냥 보내고, 멍하게 있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지금 출근 안 하면 안 돼?"
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별다른 말없이 그저, 지금 당장 집에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서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처럼 나는 당장 집에 내려갈 수는 없었고, 며칠 후 회사에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짐을 꾸려 엄마 아빠가 계신 문경으로 내려갔다. 버티지 못한 것이 자존심 상했지만, 나는 정말이지 살고 싶었고, 그곳에서는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문경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명확했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에 뛰어들었다. 집에서는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자 뭐든 똑소리 나게 해내는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대학을 다닐 때는 1등 아니면 2등 아니면 못해도 3등은 했고, 어디 가서 쓴소리를 들어본 적도 별로 없었다. 당연히 취직을 해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학교가 아니었다. 누구도 나를 가르쳐주지도, 살펴봐주지도 않았다. 스물하나의 어린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겁도 없이 발을 내디뎌버린 것이다.
비로소 생각이 정리된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울로 갔다.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자리를 잡고 다시 막내작가로 일을 배웠다. 이 전과는 확실히 다른 절실함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수많은 계절들이 지나고 1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일은 어렵고 여기저기 치이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취감과 보람이 있는 직업이라는 걸 제법 여러 번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지나가버려 너무 다행인'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고, 또 좋다고. 그때 포기하지 않은 스물한 살의 내가 너무 대견하고, 또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