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국 ‘밥’
“야는 와 이리 안 먹노.”
시골 외할머니가 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명절에 할머니 댁을 찾으면 고봉밥에 탕국 한 그릇으로 시작해 각종 전과 튀김류, 직접 만든 식혜와 한과까지 코스로 먹어줘야 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제발, 그만요!”라면서 우는소리를 해가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 때까지 과일을 깎으신다. 배가 차오르다 못해 음식물이 역류할 지경까지 먹고 또 먹어도, 얘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는 둥, 서울에서 배곯고 사는 거 아니냐는 둥, 잘 먹어야 한다는 둥의 잔소리를 한바탕 들어야만 한다.
할머니뿐만은 아니었다. 떨어져 사는 엄마의 최대 관심사 또한 나의 ‘밥’이었다.
나는 종종 그런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밥 먹기 싫어하고 입이 짧기도 했고, 끼니야 시간이 되면 먹고 아니면 조금 미뤄지거나 건너뛸 수도 있는 건데, 그 놈의 밥. 밥. 밥. 왜 그렇게들 밥에 집착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뭐 먹었냐고 묻는 전화에는 그저 먹었다고, 잘 먹고 다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대충 대답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나는 때로 밥을 안 먹으면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이유 없이 신경질이 나서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었고, 일부러 맛있는 안주를 찾아 술을 먹기 전이면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밥’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엔 고향 집에 내려갈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텅 빈 냉장고를 볼 때 그랬고 입맛이 없다며 반찬을 뒤적거리는 아빠를 볼 때마다 그랬다.
내가 뭘 먹고 다니는지는 그렇게 궁금해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매일 똑같은 반찬을 놓고 앉아 대충 끼니를 해결할 엄마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잘 못 먹을 것’을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엄마가 나의 끼니를 그렇게나 걱정했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후, 고향 집에 내려갈 때마다 옷과 신발 등으로 가득했던 내 가방은 어느덧 한우나 간장게장, 각종 건강식품으로 대신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 어김없이 엄마에게 [저녁에 뭐 사갈까? 뭐 먹고 싶어?]라는 톡을 보내지만, 단 한 번도 엄마가 명쾌하게 답한 적은 없었다. [집에 밥 있어.] 또는 [니들이 먹고 싶은 거 사 와.]가 울 엄마의 유행어인데, 아직도 자식 돈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는 걸 미안해하고 곤란해한다. 사는 게 팍팍해도, 몸이 안 좋아 입맛이 없더라도, 그래도 가끔씩 맛있는 건 꼭 먹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썩 넉넉하지가 못했다. 그렇다고 못 먹고 못 입고 자라진 않았지만, 엄마가 아주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매일 엄마와 함께 시장엘 다녔는데, 엄마는 꼭 필요한 식재료만 구입했다. 그렇게 시장을 한 바퀴 돌고 골목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분식을 파는 노점이 보였다. 김이 펄펄 오르는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떡볶이를 콕콕 찍어 먹는 여고생 언니들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노점으로 향해 있던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엄마가 “저거 먹을래?”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의 지갑에 떡볶이 사줄 돈도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나는 쉽사리 그 돈을 쓰자고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의 엄마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늘,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다고 말하는 거겠지.
그러나 나의 작은 소원은, 엄마가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말하고 내가 그걸 배 터지도록 사주는 일이다.
서른 해를 넘게 살았지만, 나는 아직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하다.
부모님에게도, 연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고,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이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내내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그것은 나의 성격이 되었고 종종 타인과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나는 내가 사랑에 인색한 사람으로 자란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건 아니다. 우리 집은 조금 가난했어도 사랑과 행복이 넘쳐났다. 하지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해주지 않았다. 무뚝뚝한 화목. 그게 바로 우리 집만의 분위기였다. 내면에 사랑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쩐지 조금 부끄럽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랑은 때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대신할 것들이 많다.
상대의 잠든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라든지, 잘 먹는 반찬을 앞으로 쓰윽 밀어 먹기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든지, 외로워 보일 때 시답잖은 농담 한마디 건네주는 것이라든지.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로 마음을 채웠고, 그렇게 풍요롭게 자라나고 살아왔다.
어쩌면, 나도 드디어 사랑을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뭐 별건가. 상대의 끼니를 걱정하는 일. 사랑한다는 추상적인 말보다 밥 먹었냐는 인사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 이보다 더 깊고 짙은 사랑이 있을까.
사랑은 결국 밥! 그러니 내가 부모님께 오래오래 맛있는 걸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