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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Sep 22. 2020

시집을 안 가면 불효라더니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넌 시집 안 가니?”    


나는 20대 중후반부터 친척 어른들에게 ‘시집 타령’을 들었다. 지방 사회라 결혼이 좀 빠른 편이기도 했고, 경북 문경의 우리 집 어른들 중에서는 아직도 여자는 20대 중반을 넘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분들이 몇 계셨다. 그때는 나도 그저 인사치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덧 30대가 되었고 “시집 안 가니~?”하고 가볍게 묻던 말이 이제는 “진짜 시집 안 갈 거니?”라고 궁서체로 바뀌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시집’이라는 단어에는 점점 무게가 실렸다.    


처음엔 웃어넘기던 나도 이제는 그 질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세 살 터울의 언니는 그 시집 타령에 그저 “가야죠~”하고 부드럽게 대응하는 성격이라면, 나는 “네. 안 갈 건데요.”하고 툭 잘라 말해버리는 성격이었다.     


생각해보니 “결혼 안 하니?”라고 묻는 게 아닌 “시집 안 가니?”라고 묻는 그 말 자체도 애초에 잘못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서른다섯, 서른둘의 자매가 둘 다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어쩌다 “둘 다 안 가면 어떻게 해. 하나라도 가야지.”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도 이상했다. 누구의 관점에서 ‘하나라도’인 걸까? 우리는 자매로 묶이기도 하지만 분명 각자의 독립된 삶이 있는데, 하나라도 가려면 둘 중 한 명은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줄곧 비혼을 주장해왔다. 여러 번 연애도 했고, 누군가와 같이 살아보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작가로서의 연차가 점점 늘어가고 혼자 있는 삶이 안정되고 즐거워지니, 더욱 결혼은 먼 이야기가 되었다. 주변 기혼 여성들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 것도 사실 비혼을 굳히는 데 한몫했다.    


결혼하면 모가 그러케 좋아효,,


몇 년 전, 결혼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큰아빠는 ‘그건 불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자매는 결혼 문제를 제외하고는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도 없고 부모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가능한 선에서 뭐든지 하는, 나름의 효녀로 소문이 나 있다. 아는 언니 중에서는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너 같은 딸이 나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어디 가서 하나 낳아오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 불효녀로 전락해버리고 말다니. 한 마디 대들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저 앞으로 보란 듯이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비혼이 정말 엄마에게 불효가 돼버린 사건이 있었다.    


나는 크게 바쁘지 않으면 한두 달에 한 번씩 문경 집에 가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그간 집안이나 회사,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썰(?)을 풀곤 한다. 이전의 몇몇 글에서도 밝힌 적이 있듯, 울 엄마는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늘 자기가 나서서 일을 하는 희생적인 성격이다. 그런 엄마가 얼굴에 잔뜩 열을 올리며 한 얘기.    


얼마 전 친척 어른들끼리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 자매의 결혼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누군가 “둘 다 결혼을 안 해서 어쩌나”하고 걱정하듯 화두를 던졌단다. 엄마 표현에 의하면 걱정이었지만, 사실 그게 진짜 걱정이었는지 단지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던 것이었는지는 의심이 되지만.     


하여튼 그렇게 얘기는 시작됐고, 그때 한 어른이 “어휴~ 엄마 사는 거 보면 애들이 결혼하고 싶겠어요?”라는 망언을 해버린 거다. 그 어른은 심지어 우리 부모님보다 손아랫사람이었다. 웬만해선 속으로 삭이는 우리 엄마가 너무 열이 받아서 그 자리에서 “제가 그렇게 불쌍하지는 않은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나는 정말 열불이 터졌다. 사실 우리 엄마가 살아온 세월이 많이 고생스러웠다는 건 집안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사업이 잘 풀려 돈을 조금 벌어들이려 할 때쯤 아빠에게 찾아온 각종 병들. 아픈 아빠를 보살피고 생계를 책임지며 중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엄마였다.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언니와 나는 엄마의 인생이 우리로 인해 보람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며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인생을 남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딸들이 시집을 안 가고 있는 것까지 엄마의 탓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정말 화가 났다. 솔직히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나의 더 큰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안 하고 있을 뿐인데. 결혼을 안 하는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정말, 별소릴 다 듣는다 싶었다.    


(엄마 카톡 프사를 이걸로 바꿔 버릴까..)


결혼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게, 그저 필요성을 못 느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게,  왜 불효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로 상처 받았을 엄마를 생각하면 확실히 불효는 불효가 맞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른들은 앞으로도 내가 결혼을 안 하고 있는 동안 내내 ‘관심과 염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닦달하고 엄마의 마음에 돌을 던지겠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딸들을 향한 죄책감에 시달리곤 할 거다.     


세상에는 결혼을 말리는 엄마도 있고 권장하는 엄마도 있을 테다. 하지만 분명한 건, 딸이 빨리 결혼을 해 자신의 곁을 떠나길 바라는 엄마는 없다. 단지 주변의 부추김에 조급 해지는 거겠지. 우리 엄마가 앞으로 결혼하지 않은 딸들 때문에 조급해하고 맘고생할까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덜컥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예상되는 사실 하나. 내가 결혼을 하면 그들은 또다시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는 ‘관심’을, 아이를 낳으면 애를 왜 그렇게 키우냐는 ‘관심’을, 바빠서 고향에 잘 내려가지 못하면 부모님께 손주 얼굴 좀 자주 보여주라는 ‘관심’을. 그렇게 수많은 관심들을 끊임없이 퍼붓겠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관심은 때로 폭력이다. 다 너를 위한 거야. 라는 말로 포장된 폭력.     


이제 겨우 32살인데... 결혼 안 한 게 그렇게 이상하고 불효인 짓일까?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하라는 잔소리도 한 철이라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일일까?        


올 추석 고향 방문 자제 운동, 나도 동참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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