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고향, 나의 제주
금요일 오후, 녹화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스튜디오를 나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제주 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 점점 발아래 놓인 그곳이 작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아득해졌다. 불과 1시간 전의 고민은 벌써 저 아래의 어딘가에 남겨져 있었다. 점점 숨통이 트였다.
나는 툭하면 제주에 간다. 작정하고 계획해서 일주일을 머무르기도, 당장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끊어서 주말 2박 3일을 보내고 오기도 한다. 혼자 떠나기도 하고 같이 떠나기도 한다.
공항을 나서자 고요하게 깔린 어둠 너머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동풍이 불어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여러 개의 집이 있다.
첫 번째 집은 내가 태어나고 19년간 자랐으며 부모님이 살고 계신 경북 문경이고, 두 번째 집은 어른이 된 내가 13년 전 터를 잡고 앞으로 한동안은 살아가기로 한 서울이다.
그런데 문경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편한 건지 아닌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해 당황한 적이 있다. 그 집에서 이 집으로 다시 ‘나오게’ 된 건지, 아니면 그 집에 갔다가 다시 ‘들어오게’ 된 건지, 그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두 집의 사이에서 며칠을 헤매는 내 모습이 있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살고 싶은 걸까.
문경의 집에는 늙고 약해져 가는 부모님이 계시는 동시에 나의 ‘책임감’이 있고, 서울의 집에는 ‘먹고 살 일’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있다. 둘 다 분명한 나의 집이었지만, 가끔은 집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나에게는 ‘나의 삶이 없는 나의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세 번째 집으로 정한 곳이 바로 제주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 무엇에 의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중반 무렵 처음으로 혼자 제주 여행을 다녀온 이후 자꾸만 자연스럽게 제주로 돌아갔다. 때로는 쉼이 필요해서였고, 때로는 이별에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고, 때로는 그저 제주가 너무 그리워 미칠 것 같아서. 다양한 이유로 툭하면 짐을 쌌다. 떠나는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어쩌면 모두 같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아플 때마다,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적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그곳으로 갔다.
그곳으로 간다는 건 현실에서의 도피이기도 했지만, 그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내가 놓인 상황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을 통해 가끔이나마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관찰하며 나를 더욱 이해하게 된다.
때로 그 시간은 여행이 아닌 앓이가 되어 나를 더욱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한없이 걸으며 마음으로 펑펑 울다 보면 그런대로 후련하고 그런대로 담담해지기도 한다.
삶은 이런저런 사건으로 빠르게 휘몰아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지금을 보내기도 한다. 그것이 아픈 시간일수록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해야 다음 챕터로 온전히 넘어갈 수 있지만, 보통은 기피하고 외면한 채 지나쳐버린다. 그러한 상처는 언젠간 더 큰 고름이 되어 터져버리고 만다. 나는 항상 그렇게 되기 ‘직전’에 제주를 찾는다. 아픈 나날들을 온전히 마주하고 털어낸 후 이겨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곳.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곳. 그리고 사시사철 남동풍이 불어오는 곳. 그곳이 나의 또 다른 고향, 제주였다.
‘다정하지 않은 청춘’의 시간들을 보내는 중, 제주는 언제나 잔잔하지만 다정한 풍경으로 삶을 위로했다. 묵묵히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제주로 돌아갔고, 언젠가 완전히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기도 한다.
제주 여행 또는 쉼의 시간은 훗날 내가 살고자 하는 ‘완전한 집’을 물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 이주를 꿈꾸다가도, 터를 잡는 순간 그곳이 더 이상 위로가 아닌 현실이 될까 겁나서 이내 마음을 접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제주가 그립다.
곧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지난 스무 번쯤의 제주 여행에서 만난 위로의 풍경을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