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통제가 아니라 ‘존재 증명’이 되는 순간
다 같이 쓰는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한숨을 쉬거나, 욕을 하거나, 자기 분에 못 이겨 씩씩대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모두가 있는 장소에서 '굳이' 분노를 표출해야만 할까. 왜 자기 분에 못 이기는 걸까. 누구더러 들으라고? 그 누구도 그 '한숨과 욕설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들의 화는 도대체 누구를 향한 것일까. 아니, 정말 '누군가'를 향한 게 맞긴 할까.
어느 사무실이든, 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가장 먼저 깨뜨리는 건, 일보다 ‘기분’이다. 누군가는 책상을 탕 치고, 누군가는 “아 sibal, 진짜 X나 짜증 나네. dogsaki” 하고 내뱉는다. 싸-.. 공기가 순간 무거워진다. 아무도 시선은 주지 않지만, 모두의 귀가 거기로 향한다. 아마, 일에 집중도 되지 않을 것이다. 욕은 한 사람의 감정이지만, 그 진한 울림은 집단 전체에 퍼진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성격의 차이인 걸까, 아니면 직무의 차이인 걸까? 아니, 그 무엇도 아니다, 그들의 욕은 사실 ‘힘의 언어'인 것이다. 조용히 화를 삭이는 대신, 소리를 내며 ‘내가 여기 있다’를 선언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 쌓인 피로, 인정받지 못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방식이다.
즉, 욕은 '권력의 대체재'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오직 ‘감정의 에너지’만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시도다. 그렇다면 조용히 참는 사람들은 약한 걸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공동의 공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건, 자기 통제력의 증거다. 욕 한마디로 시원해지는 대신, 공기의 온도를 유지시키는 사람. 그게 진짜 강한 사람이다.
나는 이제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욕을 하는 사람보다, 욕을 삼킨 사람의 하루가 훨씬 길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공기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건 묵묵히 균형을 맞추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