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죄인되는 세상

너 때문에 다 옮았어!

by 고은

일요일 밤, 나는 또 카톡 초안을 지우고 있었다.


“또 이런 연락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손가락이 먼저 죄송하다고 눌렀다.


아직 보내지도 않은 메시지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죄어 온다.

열은 겨우 미열로 떨어졌고, 머리는 여전히 깨질 듯이 아프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데


제일 먼저 떠오른 걱정은 역시 회사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출근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한 달 전에도 병가 썼는데, 또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들은 내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자동 재생되는 문장들이다.

아프면, 나는 일단 죄인이 된다.




한 달 주기로 찾아온 병들


참, 잘 - 생각해보면, 이건 단순히 운이 나빠 걸린 병들일까.


회사에 입사하고 난 후,

코로나에 걸려(물론 회사에서 옮았다) 고열에 숨이 가빠졌던 이후,

급성 방광염에 걸리고.. 심각한 혈뇨로 인한 탈수로 119에 실려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감 A형 확진. 39.8도의 고열로 또 응급실에 갔다.

이게 다, 한 달 조금 넘는 간격으로 연속해서 일어난 일이다.



병명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공통점은 하나였다.

“눈치 보느라 정신이 피폐해져갔다”는 것.


다들 평생 직장도 없는데 뭘 그렇게 눈치보느냐 말한다.


평소 나의 수면 시간은 5~7시간 사이로 뒤죽박죽이고,

야근을 하지 않는 날에도 머릿속은 계속 일 생각으로 돌아가 있다.

(비단 회사 일 뿐만 아니라 대외활동이나 부업, 교육봉사 등등. 벌려둔 일이 많다)


쉬려고 침대에 누워도, 끝내지 못한 할 일들 생각에 반쯤 깨어 있는 밤이 많았다.

실은 보통 4~6시간만 자는 것 같다. 주말은 조금 더 자긴 하지만..

*잠은 정말 중요하다. 잠이 보약.. 많이 자야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는다.(알면서왜그러지)



아마 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신호를 “내가 예민해서 그래”라며 무시해 왔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난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고 그건 나의 기질이었다.




“아프면 죄송한 사람”이 되는 구조


아픈 날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 몸이 분명 비정상인데,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나?’를 먼저 계산한다.

-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머릿속에서 ‘보고 멘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 “죄송합니다”와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를 두세 번씩 넣었다 뺐다 한다.

- 시간을 보며 너무 이르진 않은지, 메시지를 보낼 타이밍을 고민한다.

그 사이에 정작 안 하는 건,

‘지금 내 몸은 어떤 상태인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날도 그랬다. 39.8도까지 오른 열로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돌아와,

토할 것 같은 구역감과 머리를 쪼개는 두통에 밤새 뒤척이면서도,

내가 제일 많이 한 행동은 의사 말보다 상사의 반응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또 아픈 거야?”

“한 달 전에도 쉬지 않았어?”

"너 이렇게 자주 아프면 어딜 가도 일 못한다"

"너 때문에 직원들 다 옮겠다"


놀랍게도 모두 실제로 들은 말들이다.

그런데, 급성 방광염을 제외하고

나의 동선도 집-회사 가 전부였기 때문에 나도 억울(?)했다.(ㅋㅋㅋ)




“쉬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설명해야 할 사람”


우리는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한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아프면 먼저 증명부터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말로 그렇게 아픈 게 맞는지,

증명 서류는 있는지,

“이 정도 가지고” 왜 나오지 못하는지,

전날까지는 멀쩡해 보였는데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몸이 아픈 순간, 나는 환자가 아니라

어쨌든 납득 가능한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보고 메시지도 이렇게 쓴다.


“지난주 금요일 독감 A형 확진을 받았고

어제까지 고열과 어지러움으로 응급실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미열로 내려갔지만, 의사 소견상 전염 위험이 있어

오늘은 부득이하게 출근이 어렵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핵심은 사실 “몸이 아파서 일할 수 없다”인데,

그 문장을 그대로 쓰지 못하고

의사 소견, 응급실, 수치, 전염 위험을 다 붙여야

조금 덜 죄인이 된 것 같다.


마치 ‘이 정도면 쉬어도 될까요?’

허락을 구하는 양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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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 때


문제는, 이런 구조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잔인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믿고,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한 번이라도 “빠진 사람”으로 보이는 게 두려운 사람들.

이런 사람일수록 아픈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회사”와 “팀”이다.

“그래도 오늘 업무는 중요한데 내가 가야 하지 않나…”

“이거 내가 안 나가면 누가 하지…”


이렇게 건강보다 업무를 먼저 떠올리는 순간,

몸이 보내는 신호는 점점 더 강도 높은 걸로 바뀐다.


나도 그랬다. 한 번 아픈 뒤에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바로 출근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이제는 한 달 간격으로 다른 이름의 병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의 리스크와 나의 리스크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은

아픈 사람이 억지로 출근하는 것이다.


독감 A형 진단을 받은 날, 의사는 말했다.


“해열 직후 24~48시간이 전염력이 가장 높으니까,

열이 내려도 이때는 사람 많은 곳에 나가지 마세요.”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독감인 직원을 억지로 출근시키면, 팀원 여러 명이 연달아 쓰러질 수 있다.

그 손해는 하루 연차 한 번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쉬겠습니다”는 말은 회사에도 이로운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이토록 죄책감을 느끼는 건,

우리가 너무 오래 “몸보다 실적이 우선인 세계”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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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프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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