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에세이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좋다. 특히 그날, 탄천을 함께 걸으며 본 윤슬처럼 우리의 마음도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품고 살아온 우리가, 서로의 곁을 내어주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추운 날씨에 보험회사 접수를 하러 가야 한다는 언니 말에, 나는 앱으로 다시 접수하고 오후엔 탄천을 걷자고 가볍게 제안했다. 솔직히 말하면 몸이 쉽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 탓도 있었고, 여러 핑계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언니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확실히 하고서 무조건 나섰다.
J 삼촌이 돌아가시고, J가 삼촌을 뵈러 가기 전까지 언니가 느꼈을 감정. 그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복잡한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거나 무언가에 잠시라도 깊이 빠져 시간을 보내는 편이 오히려 좋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나에게 늘 그랬던 마음처럼.
언니와 함께 탄천을 걸었다. 버들강아지가 눈을 떴다는 언니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 작은 솜털과 눈을 맞추어보았다. 아기오리 떼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작은 탄성을 내는 언니와 함께 그 순간을 나누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을 보며 언니가 말했다.
"은빛 물결은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윤슬이라고 했던 것 같아."
그 말이, 그날의 탄천을 딱 맞게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운동화보다 긴 부츠를 신은 나를 배려해 언니는 돌아가는 지점을 조금 앞당겼다. 정자동 여의도순복음성전 앞까지 걷고, 정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나눈 짧은 대화와 언니가 알려준 스트레칭이 참 좋았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풀리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언니가 "철봉을 찾아가서 매달려 볼까"라고 말하자, 우린 동시에 움직였다. 철봉을 찾아 우리는 또 멈춰 섰고, 몸을 길게 늘어뜨려 매달리는 법, 힘들면 발을 땅에 닿게 해 다시 스트레칭하는 동작을 해보며 그 순간을 즐겼다.
다시 걸으며 왜가리의 숫자가 늘었다는 이야기, 일본에서 왜가리를 키우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까지 자연스레 나누었다. 탄천 중간쯤, 운동기구가 잘 갖춰진 공간에서 언니는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을 던져도 들어가지 않던 공을, 내가 공 잡는 위치와 손목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도전들을 함께 즐겼다.
언니와 함께한 시간은 늘 그렇듯 금세 흘러갔다. 어느새 만 보를 채웠고, 언니가 챙겨준 찰밥을 참 맛있게 먹었다.
언니, 내가 J의 아픔이 보이는 건, 아마도 내가 어릴 적의 아픔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일 거야. 상처받은 어린아이는 쉽게 자라지 않는 모양이더라. 나이가 예순이 되었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상처받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은정이가 살고 있다.
J 안에도 그런 아이가 살고 있을 거야. 어떤 부분에서는 똑똑하고 단단하게 자랐지만, 상처받은 어린 J는 아직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다. 나처럼.
언니는 어린 시절 비교적 유복했고 큰 상처 없이 자랐잖아. 어른이 되어 받은 상처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결이 다른 것 같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처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더라. 그래도 우리는 어린 시절의 J를 한 번 안아주자. 조금 더 자랄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주자.
나 역시 어린 은정이를 돌보며,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나 더 성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어린 은정이를 토닥토닥, 잘했다고 내가 칭찬해주곤 한다.
그날 탄천을 함께 걸으면서 본 윤슬처럼, 우리의 마음도 햇살을 받으면 반짝일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가끔은 이렇게, 말없이 곁을 내어주며 함께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