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노래방 가던 우리가...

일상의 결 (사는 이야기)

by 신은정

오랜만에 윤정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

"윤정이 결혼했어. 작년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윤정이가? 그 꼬마 윤정이가? 큰딸이랑 호주 갔을 때 만났던 그 아이가 벌써 결혼을 했다니. 왜 안 알렸냐는 말이 나왔다.

정신없었다는 그녀의 말에 조금 서운하기도했지만 펑소 연락없이 지나온 나를 반성해본다.. 지나간 걸 어찌하랴. 다음에 만나면 인사해야지.

등촌동 주공아파트.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 가까이 지냈다.

윤정이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만두를 빚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100개는 족히 만들었을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실컷 먹고, 남은 건 냉동실 가득 채워 넣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니.


"선덕이 엄마 기억나? 그때 노래방 갔던 거. 갑자기 생각나네."

윤정이 엄마가 웃으며 그때의 일을 꺼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였을 것이다. 윤정이 엄마의 절친인 선덕이 엄마가 시댁에서 금일봉을 받았다며 우리를 불러 맛있는 걸 사주었다. 나는 막내를 업고 갔다. 아이는 아직

두돌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리 셋은 식사를 하고 수다를 쏟아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까지. 엄마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배가 부르자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노래방 갈까?"

"노래방 갈까?"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이 딱 맞았다.

우산을 받쳐 들고 아기띠에 막내를 꼭 안은 채 노래방으로 향했다. 빗물에 젖은 바지가 축축하게 다리에 달라붙었고, 업힌 아기는 엄마 등에서 새근새근 잠들어갔다.

노래방 안에 들어서자 환한 조명과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마이크를 돌려가며 노래를 불렀다. 막내는 등에서 내내 잠자고 있었다.

걱정은 많았지만 웃음도 많았던 시절.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었지만, 그래서 더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던 시간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중에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딸아이 아빠 회사 직원들이었다. 같은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이를 키웠기에 내 회사 동료이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들도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 왔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등에 업힌 아기와 함께 노래방에 있는 내 모습이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윤정이 엄마, 선덕이 엄마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없고라도 노래방을 갔던 우리들...

그래, 우리는 엄마이기 전에 잠깐이라도 노래하고 웃고 싶었던 젊은 여자들이었다.

"그때 우리 참 젊었지?"

전화기 너머 윤정이 엄마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나왔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웃곤 한다.

"근데 있잖아, 선덕이네 힘들 때 지방 갔다가 재기해서 서울로 이사 왔어. 그것도 남산 근처 유명한 아파트로."

선덕이네가 남산으로? 한때 어려운 시절 지방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다시 일어나 서울로, 그것도 남산으로 돌아왔다니.

"정말? 와, 대단하다! 정말 축하할 일이네요!"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했다.

"선덕이 엄마는 요즘 라인댄스 하면서 봉사 다닌대. 해외도 다니고."

선덕이 엄마 이야기를 듣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선덕이 엄마가 라인댄스를 하며 봉사 활동을 다니고, 해외여행도 다닌다니. 믿기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월의 빠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강물처럼 흘러간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그저 '어느새'라는 말만이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윤정이 엄마는 딸들의 결혼을 무사히 치렀고, 선덕이네는 힘든 시절을 딛고 남산 유명 아파트로 돌아와 세계를 누비며 춤을 추고 있고, 나는 60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매일의 취향이라는 책이 나온다.

비 오는 날 아기를 업고 "노래방 갈까?" 하고 동시에 외치던 젊은 엄마들이 이제는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다음엔 꼭 만나자고, 우리는 약속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내며 또 웃자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자고.

오랜만에 너무 반갑고 따뜻한 통화였다

작가의 이전글윤슬처럼,우리의 마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