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 위에서, 다시 햇살을 기다리다

일상의 결 (사는 이야기)

by 신은정


매달 1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한 통의 글이 있다.

벌써 두 해가 넘었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 글은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나를 찾아왔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얼어버린 동토는 죽은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치열한 생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2월 첫날 아침에 받은 이 문장속 동토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동토'. 말 그대로 얼어붙은 땅, 차갑게 굳어 있는 땅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이 묵묵히 흐르고 있는 땅.

문득, 내 안의 어떤 시간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내 내면 어느부분은 얼어붙은듯이 굳어있다.

몸이 회복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내면 어딘가는 여전히 얼어 있었다.

생명이나 온기가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어딘가가.

하지만 어쩌면 그 마음도 나름의 속도로 견디며 겨울을 건너는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빛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매달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어울릴 만한 문장을 고르고, 그 문장을 다정히 건넨다.

그 꾸준한 마음과 사소해 보이는 정성이 어쩌면 동토 위로 처음 내린 햇살 같은 것.

윤슬처럼, 아주 작은 빛이라도 받아 잠시 반짝여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봄은 아니어도, 햇살을 향해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려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예순의 문턱에서 다시 글을 쓴다는 건 새로 시작한다기보다, 오랫동안 얼어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햇볕에 내어놓는 일.

아직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한 글자씩 한문장씩 쓸 때마다 내마음의 동토가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리길 기도해본다.


동토는 아직 단단하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분명, 다음 계절을 향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계절에 봄이 오듯이

얼어붙은 동토에도 꽃이 피듯이

내마음의 동토에도 꽃이 피길 기다려본다.

작가의 이전글비 오는 날, 노래방 가던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