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의 가격은 액체가 아닌 '기억'에 매겨진다
딸아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38만 원짜리 향수.
그 가격을 듣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내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향수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20만 원대였기에,
30만 원이 훌쩍 넘는 숫자는 놀라움과 함께 다가왔다.
결국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질 향기에 우리는 왜 이토록 큰 값을 치르는 걸까.
아무리 향이 좋아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병에 담긴 액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나만의 이름이라는 것을.
생각은 자연스레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적 장면으로 흘러갔다. 가끔 향수를 뿌린 날이면 아이들은 내 품에 파고들며 말하곤 했다.
"엄마 냄새 나서 좋아."
그 말 속에는 향수의 브랜드에서 나는 향이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안심과 온기가 향수에 섞여 담겨 있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스친 향이 좋아
무슨향을 쓰세요?라며 향수의 이름을 묻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강한 향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그니처 향을 찾는다. 그 향이 결국 '그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향수의 진짜 값어치는 그 향이 비싸냐 저렴하냐에 있지 않다.
향수의 값은 병 속의 액체가 아니라, 사람이 남기고 싶은 기억의 형태에 붙는 가격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가 남긴 잔향이 잠시 머물다 간다면, 그리고 그 향이 따스한 기억으로 치환된다면, 나는 이미 충분한 값을 치른 셈이다.
향기는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 사람보다 오래 남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이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