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여성의 말은 왜 더 쉽게 지워지는가

여성의 말

by 신은정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말을 끝까지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듣기 싫어한다는 걸 느낀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살면서 몸으로 겪어온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그 말은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가 되어 있었다.


겪은 일은 분명히 늘었는데, 말이 닿는 자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요즘은 달라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뭔가 반박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이 틀렸나 싶어서가 아니라, 그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게 반복되면서 알게 됐다. 저 말들은 내 말의 내용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는 걸.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누가 말했는지를 먼저 걸러내는 방식이라는 걸.


나이 든 여성의 말은 자주 '현재성'이 없다고 여겨진다. 지나간 시대의 감각, 업데이트되지 않은 생각. 그런데 그 말들 안에는 오래 견뎌온 관계의 기술이 있고, 수없이 넘어졌던 자리의 기억이 있고,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이 나이 들수록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고 했다. 없어진 게 아닌데 시선이 거두어지는 것.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젊은 여성의 말은 가능성으로 들리고, 나이 든 여성의 말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처럼 취급된다. 똑같은 문장인데 말하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러니 말이 줄어드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 안 하게 되고,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게 된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너무 많이 경험해왔으니까.


작가 수전 손택은 여성의 나이 듦이 능력이 아닌 한계로 읽혀왔다고 했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관심을 가진다는 건
어쩌면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읽기 방식이 결국 말할 자격을 조용히 거두어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침묵은 지혜의 결과가 아니다. 대부분은 피로의 결과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반복해서 배워온 결과다.


어느 순간부터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게 됐다. 이 말을 꺼내면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내가 유난스러운 사람이 될까. 그 계산 끝에 말은 다시 접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습관이 조금씩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쓰면서도 순간순간 멈칫한다.

꼰대처럼 들리면 어쩌지. 라떼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 그 말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손가락이 잠깐 멈춘다.

그래도 써본다.

말로 하면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돌아오고, 다시 읽힌다.


나이 든 여성이 글을 쓸 때 그 문장은 조급하지 않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깊고, 그래서 어쩌면 더 위험한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말을 줄이는 대신 글을 선택했다.

시대에 맞추기 위해 내가 겪어온 것들을 접어두고 싶지도 않다.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말해보려 한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쌓아온 시간을 내가 먼저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이 든 여성의 말은 늦은 말이 아니다. 충분히 숙성된 말이다.


말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조금 다른 곳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언제부터 어떤 말이 '이제 와서'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있나요?



〈여성의 말〉 4화 — 삼켜온 말들이 다음 세대에서 피어난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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