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여자는 왜 위험하다고

여성의 말

by 신은정

서현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그 안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작가 문하연의 프롤로그였다.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본능적으로 그림에 이끌려

10년 동안 미술을 감상하고 공부해왔다는 이력 뒤에 이 문장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글을 쓰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했다.

위험한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단단해지는 건 사실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궁금해졌다.

환갑을 넘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를 둘러싼 시선들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무슨 글을?”

말 속에는

말리지 않아도 스스로 멈추길 바라는

은근한 제지가 섞여 있었다.


조용히,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살라는.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60년을 살아오며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켜왔는지를.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늘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리며

정작 내 이름으로 말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 ‘누군가’는

어쩌면

내 안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나이 든 여자가 글을 쓰는 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미 다 산 인생인데

새삼스럽다고

속삭이던 그 목소리.


말 한 줄이 이렇게 오래 남아

사람을 흔들 수 있다면,

그 말의 뿌리 또한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문장은

치카나 페미니스트 작가

글로리아 안살두아에게 닿아 있었다.

안살두아는

Borderlands/La Frontera에서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침묵을 강요받아 온

경계를 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말을 삼키는 대신

문장으로 꺼내는 순간,

여자는 더 이상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글을 쓴다는 건

기억을 되찾는 일이고,

침묵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며,

스스로를 지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조용한 여자는 오랫동안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안전한 존재였다.

묻지 않고,

흔들지 않고,

정해진 말을 대신 반복하던 자리에서

여자가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당연하던 규칙은

설명을 요구받는다.


글은 사라지는 말이 아니다.

남아 있고,

돌아오고,

다시 읽히는 목소리다.


그래서 글을 쓰는 여자는

기억을 관리받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쓰는 사람이 된다.

불편함은 언제나

권력이 질문을 받기 시작할 때 생긴다.


글을 쓰는 여자가

위험하다고 불리는 이유도

아마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60년을 살아온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쌓아온 시간만큼 깊이 있게,

견뎌온 침묵만큼 단단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자기 이름으로 말하기 시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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