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견디는 힘은 이미 있었을지도 모른다

by 신은정


우산 위의 유리잔

이 그림을 보고 난 뒤

며칠 동안 자꾸 머릿속에 그림이 떠 다녔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그림도 아닌데,


우산 위에 유리잔이 놓여 있다.

물은 가득 차 있고,

쏟아질 듯 말 듯 위태로워 보인다.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곧 물이 쏟아질 거라고,

그러면 무언가 큰일이 날 것 같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유리잔의 물이 쏟아진다 해도,

그 물이 우산 아래의 세계를

정말 크게 바꿔놓을까.


우산은 원래 비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예기치 않은 물 한 컵쯤은

놀라게 할 수는 있어도

삶 전체를 뒤흔들 만큼의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는

불안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대신 조용히 묻는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물잔이

정말 그렇게까지 큰 일인지.


우리는 종종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겪은 것처럼 마음을 소진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앞에서

먼저 흔들리고,

또 걱정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비를 맞아도 괜찮은 우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머리 위의 유리잔만 바라보며

삶 전체가 위험해졌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결국 이 그림은

불안의 순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불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묻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염려하는 그 일이 정말

우리를 무너뜨릴 만큼 큰가?

아니면

잠시 젖고 지나갈 정도의 일이었는지.

한번쯤깊이 생각해보게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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