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한 그림을 3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였다.
오래 바라본 끝에, 그녀는 그림 속 소녀에게 삶을 건넸다.
소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썼고, 이야기는 영화가 되었다.
그림 속 소녀는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로 우리 앞에 섰다.
나는 다락방미술관이라는 책에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보고 곧바로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 소녀 그리트의 아버지는 실명으로 생계를 잃는다. 크리트는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말이 적고, 눈이 깊은 아이였다.
색과 빛에 유난히 민감했고,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뉘앙스를 조용히 읽어내는 감각을 지녔다.
그림 도구의 위치, 물감의 질감, 물을 섞는 비율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페르메이르는 단번에 알아본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각.
화가와 하녀는
말 없이 같은 빛을 바라보는 사이가 된다.
30년을 품는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나도 무언가를 그렇게 오래 품을 수 있을까.
쉽게 지나치고,
빨리 잊고,
금방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한 그림을 그렇게 오래 마음에 두고 살 수 있을까.
그림 속 소녀는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터번의 색도, 진주 귀걸이의 빛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30년 바라본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오래 품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오래 품고 살아갈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