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온 말들이 다음 세대에서 피어난

여성의 말

by 신은정

얼마 전 언니들과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세탁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남편 옷을 세탁소에 맡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드라이 세제로 손수 빠는 언니들 앞에서.

말을 마치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낭비하는 여자로 보였을까.

잘난 척으로 들렸을까.

괜히 꺼냈나.


별것 아닌 세탁 이야기인데, 말하고 나서 한참을 혼자 되짚었다. 어떤이와의 대화는 대화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순간을 집까지 데러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대화는 조금 조심하게 된다.

말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그 감각 때문에.


말을 끝까지 했는데 분위기가 살짝 바뀌는 느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흘려듣는 것 같은 느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인지 작아지는 기분.

살면서 몸으로 겪어온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그 말은 그냥 개인적인 경험담이 되어버린다.


수십 년을 살면서 반복해서 겪고,

틀리고,

다시 해보면서 쌓아온 것들인데.


특히 여성의 경험은 더 쉽게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집 안에서 해온 수많은 판단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써온 에너지들,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읽어온 감각들.

그런 것들은 능력으로 인정받기보다 그냥 으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 사상가 벨 훅스는 여성의 지식이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성의 경험은 늘 번역을 요구받는다.

감정은 통계로,

직관은 데이터로,

관계의 맥락은 요약문으로.

그걸 통과하지 못하면 말은 채택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말을 줄이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하지 않고,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게 됐다. 이 말을 꺼내면 어떻게 보일까. 괜히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 계산 끝에 말은 다시 접혔다.


그런데 요즘 여성들은 많이 달라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한다.

결혼을 선택으로 생각하고,

아이도 선택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만 불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행을 혼자 떠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도 충분하다는 걸 안다.

나이 들어서도 배우고,

나이 들어서도 시작한다.

늦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 이름으로 말한다. 삼키지 않고, 작아지지 않고.


처음엔 낯설었다.

저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알겠다. 저게 맞다. 우리가 오래 삼켜온 말들을 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꺼내고 있는 거다.


잘하고 있다. 정말로, 잘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말로 하면 흘러가버리지만 글은 남는다.

돌아오고, 다시 읽힌다.

세탁소 이야기도, 커피 한 잔 앞에서 괜히 꺼냈나 싶었던 그 이야기도, 글이 되면 더 이상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경험은 이미 충분한 자격이다. 다만 그것을 자격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준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그 기준에 맞추어 경험을 번역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그대로 적어보려 한다.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

삼켜온 말들이 다음 세대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늦었지만,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의 경험은 언제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로 치워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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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말 #삼켜온말들 #60대작가 #여성글쓰기 #다음세대 #브런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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