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시작부터 묻는다.
"저들은 어떤 관계일까?"
뉴욕의 한 술집, 새벽.
동양 남자와 동양 여자가 눈을 맞추고 긴 대화를 나눈다.
그 옆에서 백인 남자는 조용히 지켜본다.
말은 셋이 나누지만, 감정은 둘 사이에 흐른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알았다.
저 장면이 오래 남을 거라는 걸.
누구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계 캐나다 감독 셀린 송의 자전적 이야기다.
열두 살, 부모의 결정으로 이민을 떠난 나영.
첫사랑 혜성의 삶에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다.
나영은 '노라'가 되어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꾸고,
혜성은 서울에서 제 삶을 이어간다.
SNS가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지만,
시간은 이미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노라는 자신의 삶을 선택했고,
레지던스에서 만난 아서와 결혼했다.
뉴욕 술집의 그 새벽.
조용히 지켜보던 백인 남자는 남편이고,
눈을 맞추던 동양 남자는 첫사랑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화면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호주로 떠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차피 멀어질 사람.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일기장을 보내왔던 사람이었는데.
그 정성을, 나는 거리라는 이유 하나로 먼저 포기했다.
육십이 넘어 그 장면을 다시 꺼내보니
그때의 내가 참 어렸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안다.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에 함께 머물렀는가로 남는 것이라고.
노라는 선택했고,
혜성은 남겨졌고,
아서는 이해하려 애쓴다.
사랑에는 승패가 없지만
시간은 언제나 한 사람을 선택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뉴욕 술집에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한때 나를 스쳐 간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마음속으로 묻는다.
그때 조금만 더 붙잡았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질문에
책망 대신 이런 말을 건넨다.
당신은 그때의 당신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첫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나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 되어 남는다.
그게 패스트 라이브즈가 내게 준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