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 책 한 권을 보내 드렸다.
딸아이에게 뉴질랜드로 옷과 책을 보내려고 우체국에 갔던 날이었다.
소포를 부치다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 함께 책을 보냈다.
며칠 뒤 역사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반가운 답장이 도착했다.
“소중한 책을 받고 답장이 늦었네.
네 편의 글을 읽으며 ‘맞아, 이게 수필이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선생님은 일상의 삶을 붓 가는 대로 썼음에도 글이 일관성을 잃지 않고
삶의 의미를 담담하게 녹여낸 솜씨가 여간이 아니라며
“계속 이어가시게나.”라는 말로 답장을 마무리해 주셨다.
어릴 적 국어 선생님께 들은 칭찬이라 그런지
괜히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문득 선생님의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을 안아 주던 모습도,
선생님 댁에 가서 밥을 먹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선생님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열어 본다.
결혼해 어른이 된 그때의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아들은 대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결혼 전에는 중매를 생각해 본 적도 있었던 그 큰아들이다.
혹시 사진이라도 올라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프로필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진 대신
짧은 네 줄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老覺人生 萬事非
憂患如山 一笑空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보니
세상만사 많은 일들이 결국은 별것 아니었고,
근심과 걱정은 산처럼 쌓였지만
한 번 웃어 넘기면 모두 허공처럼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한문을 다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 것 같았다.
이 네 줄은 어떤 글귀가 아니라
선생님이 살아온 세월을 통과하며 얻은 결론 같은 말이라는 것을.
젊을 때는 모든 일이 크다.
상처도 크고, 고민도 크고,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많은 일들이
결국은 지나가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산처럼 보이던 걱정도
어느 날 문득
한 번 웃어 넘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선생님의 프로필에 남겨진 네 줄의 글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미 긴 세월을 지나오며
그 웃음을 배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삶의 결론을
말없이 제자들에게 건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생은
수많은 근심을 안고 살아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모든 것을 한 번 웃어 넘기는 법을
천천히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짧은 답장 속
“계속 이어가시게나.”라는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나는 오늘도
내 삶의 문장들을
조용히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