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도와 명도에 유혹되는 계절이 봄이다. 하지만 봄이라고 방심해선 안된다. 아직 철수하지 않은 겨울의 잔류병들이 3월에 매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꽃샘추위라는 전술로 겨울은 건재하다고 경고장을 날리지만, 우리는 안다. 묵묵히 기다리면 끝물 추위 끝에 선물 같은 진짜배기 봄이 온다는 것을. 자연이 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소중한 가르침.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 지나가는 시간이 폭풍우 같더라도 견디고 버티고 무너지지 않으면 봄날 같은 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고통받은 인생들과 축복받은 인생들의 행복량은 동일하다는 '고통 총량의 법칙'이 생각난다.
겨울이 갔다는 신호. 여름이 온다는 신호, 추위가 더위로 바뀐다는 신호,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 불로 바뀔 때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노란 불같은 것. 봄날은 짧다. 봄날은 간다. '봄'에 대한 카피라이터 정철의 정의가 무엇이든 유한함을 일깨운다. 열기가 우리를 점령할 때 백만 년 전 경험처럼 그리워할 봄날의 냉기. 그래서 도도한 추위도 봄 안에 품어본다.